• 최종편집 2024-05-03(금)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중화리괘를 보면 ‘밝음이 또다시 겹쳐 오른다. 태양이 매일 끊임없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대인은 이를 본받아 태양의 밝음과 같은 자신의 밝음을 계속 이어나가고 그 덕의 빛을 천하에 구석구석 비춘다’라고 되어 있다. ‘중화리’의 ‘리(離)’는 ‘생명의 근원이며 붙음’의 괘이다. 불이 붙음의 속성을 지니고 있듯이 우리 존재도 바름에 붙었다면 그 덕성을 기르고 익혀서 잘 닦아야 한다. 불은 그 실체가 없다. 바람이 다른 물체와 상호 작용할 때만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불도 존재하려면 점화되어야 한다. 산소와 결합하여 빛과 열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은 불의 존재가 애착에 달려 있음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씨앗이 흙에 붙어서 싹을 틔워야 생명이 탄생하는 것처럼 붙음을 통해 생명이 탄생한다. 따라서 불은 생명의 생명력과 변화의 힘을 상징하는 생명의 은유가 된다. 

 

불꽃의 존재는 만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태양을 상징한다. 가장 큰 불의 근원인 태양은 가까이에서 관찰할 때 흥미로운 역설을 드러낸다. 공허함 또는 '허명'(虛明)으로 나타난다. 비움 속의 충만함이라는 본질을 담고 있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심오한 성취를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수필집 『텅 빈 충만』을 쓴 법정 스님도 ‘텅 빈 충만’을 ‘맑은 가난(청빈)’이라 하여 청빈한 생활을 강조한다. 오늘날 넘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만족할 줄 모르며 겉으로는 화려할지 모르나 정신적으로 초라하고 궁핍하다. 욕심 때문이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가꿔야 한다. 산길에서 만나는 꽃 한송이의 소소한 기쁨, 친구에게서 온 다정한 전화 한 통에 행복을 찾음으로써 개인은 숨겨진 행복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중론』을 쓴 용수도 이런 말을 했다. “그대가 만족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그대는 그 돈과 재산의 노예일 뿐이다.” 행복은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다. 인생을 알차게 살려면 그 행복을 찾는 것이다. 물성에 한눈팔지 말고, 정성에 초점을 맞추라. 

 

오늘날 인류의 문명은 언어의 사용에서 비롯됐다. 언어의 사용은 책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들어 미래 세대의 지적 발전에 기여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알렉산드라 도서관을 짓게 한 것이다. 알렉산드라 도서관은 고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가져와 세월이 지날수록 문명이 향상되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나. 불의 사용 때문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감사해야 하나. 아니다. 불은 인간이 만들어 사용했다. B.C.50만 년 전 북경 원인의 두개골 파편이 발견되었는데, 그때 두개골 옆에 불에 탄 볍씨가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불에 고기를 익혀 먹었고, 덕분에 소화 에너지를 덜 쓰게 되어 남는 에너지는 뇌 발달에 쓰였다. 고기를 익혀 먹게 되니까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었고, 이것은 뇌의 발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즉 두개골 뼈가 얇아지고 근육이 얇아지게 되어 뇌가 커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더불어 구강이 넓어져 혀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이로써 인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말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생각은 더욱 치밀해졌다. B.C.5,000∼3,000년 경 석기의 도구가 타제 석기에서 마제 석기로 변했는데, 이것은 인류가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보다 치밀해졌다는 역사적 반증이다. 돌을 바위에 떨어뜨려 날카로운 돌을 골라 쓰다가 돌을 자기가 쓰려고 하는 목적에 맞게 갈아서 쓰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생각이 발달함으로써 사냥감(사슴, 소, 말, 멧돼지 등)을 동굴에 그릴 때 모양 그대로 그리다가 점차 기호를 사용하여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 즉 구체화에서 추상화로 나아갔다. 이어서 말을 저장하는 글이 만들어졌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 없앤다. 태양은 바위를 돌로 그리고 돌을 모래로 부순다. 그렇게 부숴진 모래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의 재료가 된다. 콘크리트의 핵심 성분인 이산화규소(SiO₂)가 모래와 석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인류가 이룩한 현대문명은 결국 모래와 불의 변형력이 만들어낸 성과이다. 

 

그릇이 유용하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고 수레바퀴 축이 굴러가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몸도 최적의 기능을 위해 맑은 마음과 공허함이 필요하다. 이 공허함은 꿈과 열망이 번창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강한 사회와 국가는 헌신과 열망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집단적 힘을 키우는 개인의 자발적인 기여로 형성된다.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다. 인간의 나이테다. 열대 우림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고 한다. 추위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테를 복잡하고 아름답게 만들려면 인생에서 고난, 고통, 기쁨, 사랑 따위가 서로 섞여 만들어내는 무늬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무늬를 스스로 꾸며 키워야 한다. 나비가 누에고치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쓸 때, 인간이 도와주려고 가위를 가지고 구멍을 넓혀주면 누에는 누에고치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누에고치에서 나온 나비는 오히려 날지 못한다. 스스로 빠져나오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붓는 과정을 거쳐야 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신의 오묘한 진리다. 사회의 힘은 성장과 번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쏟는 개인의 노력이 합쳐져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강한 사회다. 그런 사회가 모여 형성된 국가가 강한 국가다. 

 

여기까지가 『주역』 상경이다. 건・곤에서 시작하여 감・리에서 끝났다. 다음 하경은 함・항에서 출발하여 기제・미제로 끝난다. 

 

중화리는 『주역』 상경의 마지막 괘다. 태양이 중첩되어 있는 모습이다. 매우 밝고 희망적이다. 중화리(重火離)의 리(離)는 ‘떠남’의 뜻이다. 그런데 리(離)와 동음으로 된 글자가 려(麗)다. 려(麗)는 ‘붙는다“의 의미다. 떠남과 붙음. 반대말이다. 떠남과 붙음은 모든 물질대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주의 탄생(빅뱅)와 소멸(빅크런치, 또는 빅립)을 보라. 원자들이 달라붙어 별을 만들고, 나중에는 다시 원자들이 떨어져 별은 소멸된다. 중화리괘를 보면 음과 양이 서로 번갈아 있는 모양이다. 즉 만나고 헤어지면서 인간 사회가 형성되는 것과 같다. 원자들이 서로 붙어 물질을 형성하고 원자들이 흩어져 소멸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떠남과 붙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씨를 아무 데나 뿌린다고 해서 싹이 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적합한 토양에 달라붙어야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다. 인간도 자궁에 착상이 되어야 비로소 임신이 된다.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중화리의 리(離)는 해의 상징이다. 해는 허명이다. 텅 비어있지만 그 안에 빛으로 가득하다. 그 빛은 햇빛이다. 에너지를 가진 빛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태양은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린다. ’조우사방(照于四方)이다. 태양 빛은 천하 사방에 구석구석 아니 비췬 곳이 없다. 생명의 근원이다. 자신의 선한 능력을 ‘조우사방(照于四方)’해야 한다. 어떻게?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면 된다. 그러면 선한 능력이 바이러스처럼 사방에 퍼진다. 그것이 선순환을 일으켜 사회가 밝아진다. 중화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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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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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불과 물, 생명의 근원과 철학적 의미(중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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