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천산둔괘를 보면 ‘하늘이 위에 있고, 산이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매우 정상적인 모습이다. 『주역』의 괘에서 정상적인 모습은 별로 좋은 괘의 모습은 아니다. 정상적일 때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정지되어 생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늘은 떠나가려 하고, 산은 아래에 있는 것을 능멸하려 하니, 양자는 서로 엇갈려서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둔거(은둔하여 사라지다)라는 뜻이 생겨나게 되었다. 어쨌든 군자는 이를 본받아 소인들을 멀리하고 자신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천산둔’의 ‘둔(遯)’은 ‘은둔’의 의미다.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것은 은둔이 아니다. 반드시 대의가 있어야 한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어야 한다. 
 
은둔하면서 하늘(신, 영혼)을 떠받드는 실천성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으로 『월든』(Walden, 1854)이 있다. 초월주의자인 핸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자신의 고향인 메사추세츠주의 콩코드라는 마을에서 3.2km 떨어진 숲이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월든’이란 곳에서 2년 정도(1845년부터 1847년까지) 머무르며 잃어버린 실재를 회복하고 지각의 문제를 가장 단순한 조건, 즉 인간과 자연으로 환원하여 실재를 찾으려 했다. 소로우는 지고의 청정성을 자연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자연의 영원함을 느끼는 시적 감정이 충만한 내적 풍요를 누리려 한다. 소로우가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던 진리의 추구는 인간혼의 영원성이었다. 그리고 그 영원의 모든 계기를 현재에 두었다. 즉 소로우는 영원이란 것이 자기가 존재하는 시대와 장소에 있다고 생각하여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무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현재라는 촌각에 놓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후 소로우의 이런 사상은 시민 불복종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는 간디, 만델라, 톨스토이, 마틴 루터 킹목사 등이다. 
 
『숫다니파타』(경의 모음)에 나오는 제1장 뱀의 장 중 세 번째 경인 코뿔소 뿔의 경 71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바로 대자유를 빗댄 말이다. 확증 편향적인 생각을 탈피하는 사람이 바로 대자유인이다. 
 
자신의 몸과 정신에 잘 맞는 습관을 버려야 진정한 자유가 생긴다. 진정한 자유란 어떤 것인가. 새처럼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편식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을 용기를 내어 먹어보는 것, 그래서  나중에 그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음식에 자유를 느끼게 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한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삭힌 홍어를 맛있게 먹을 때다. 청국장을 스스럼없이 먹게 될 때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고 인정하지 않는가. 따라서 자유인이 되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려야 한다. 드럼 악기에 자유로워지려면 드럼을 잘 연주해야 한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 나와도 자유롭게 드럼을 연주하면 된다. 그때 드럼에 대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드럼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리듬을 안 보고 노래만 듣고도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불교에서도 깨달음을 얻은 자를 일컬어 대자유인이라 한다. 음악에 자유인이 되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트롯 장르만 들으면 안 된다. 재즈, R&B, 흑인영가, 라틴 음악까지 듣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 분야의 임계점을 뛰어넘어 특이점까지 가야 한다. 무한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이 가진 편견을 깨부수어야 한다. 흔적도 없는 바람처럼. 다음은 고(故) 신해철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 중 첫 부분의 가사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이하 생략) 
 
좁고 좁은 저 문으로 가야 하긴 하는데, 문을 부수는 방법이 있고, 나를 잘라서 가는 방법이 있을텐데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을 자르고, 내가 나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긴다면 무엇이 남을까? 어디서 어디까지 버려야 나인게 될까, 어디서 어디까지 버리면 내가 아닐까. 내가 가진 것들, 사회적으로 가진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주위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평판을 얻기 위해 자제해야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하고, 깡그리 버린다면 오로지 남는 것은 의지와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마저 버려야 대자유인이 된다. 자존심 가득한 공무원이 은퇴하면 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 힘들까. 자존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구속인이 되고, 자존감을 가진 사람을 자유인이 된다. 
 
자유인이 되려면 구속인에서 자유인으로 ‘건너가기’를 잘해야 한다. 건너가기의 사다리에 오르려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낯선 것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자기의 마음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들과 친근하게 지내야 한다. 대자유인의 정치가는 여야를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속한 당을 위해서도 상대되는 당까지 포섭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저 하늘 위로 날아가는 새처럼 육지에서 하늘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왔다 갔다 하는 자유로운 새처럼 어떤 분야라도 마음껏 날아다녀야 대자유인의 정치가라 할 수 있겠다. 
 
산 속에 은둔한다고 하여 대자유인이 될 수 없다. 그건 자연인이다. 대자유인이 되려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끊임없는 훈련을 하여 감정적 공감 능력뿐만 아니라 인지적 공감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임계점을 넘어 특이점까지 찾아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실현 가능한 대의를 찾을 수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월든』에서 말했듯이 자기가 존재하는 시대와 장소, 즉 현재에 바탕을 두고 현재라는 촉각에 놓인 삶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월든』은 소로우의 고의적인 은둔 선택이 개인의 성장, 성찰, 자연과의 더 깊은 연결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삶과 사회, 행복 추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소로우의 은둔 경험은 궁극적으로 단순함, 자립, 그리고 외부 세계의 요구와 산만함으로부터 거리를 둘 때 오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도록 이끌었다. 소로우의 은둔은 자연이 준 대 자유지 대 자유인은 아니다. 그건 자연인에 가깝다. 대자유인이 되려면 ‘은둔을 하더라도 하늘(백성)의 뜻을 받들 줄 알아야 한다’고 천산둔괘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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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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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대자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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