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전준우입니다..jpg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길을 가다가 경찰서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오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어 보였을까. 정말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옷차림은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의 옷차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빨갛게 염색한 머리, 스냅백, 허리춤에는 손수건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박스티에 조거 팬츠, 스니커즈. 20대 청년들이 입고 다닐 만한 스타일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리다시피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 아이는 한 번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할머니의 손을 놓지도 않았다. 무척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껄렁해 보이는 스타일의 어린아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경찰서에서 나오던 아이, 나는 어쩌면 그 아이가 느꼈을지도 모를 두려움, 걱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SNS의 영향으로 이른 나이에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는 식의 틀에 박힌 결과는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이 몰라서 그렇지, 요즘 애들이 빨라.", "자식이 염색해달라고 하는데 부모가 안 해주고 배길 수 있어?" 하고 웃어넘겨버릴 만한 장면이었다면 그 장면이 뇌리에 그렇게 강하게 박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두렵거나 민망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과 기술이 어른에 비해 부족하다. 두렵거나 민망한 상황이 생기면 눈과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그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러나 핏기가 가신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주변에 철봉이 있다면 철봉에 매달리거나. 
 
슈퍼마켓에서 몰래 과자 갖고 나오기, 약한 친구 괴롭히기, 치고받고 싸우기. 어린아이들이 주로 하는 나쁜 행동들이다. 아마 그 아이도 이런 나쁜 행동들을 통해 경찰서에 방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인도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경찰서에 방문하는 게 두렵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법의 잣대를 통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린아이라면 그 두려움은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고사리처럼 작았던 그 아이의 손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상상이다. 아무런 근거 없는 착각일 수도 있다. INFJ라는 성향에 걸맞게 별 것도 아닌 일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내 착각이 사실이라면, 그 아이의 두려움은 누가 보듬어주고 없애줄 것인가. 
 
학창 시절에도 비슷한 친구들이 있었다. 노랗고 빨갛게 염색한 머리, 튀는 옷차림, 주머니에 꽂은 손, 껄렁한 태도. 어쩌면 그 나이대에서만 가능한 패션과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은 대부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가운데에서 성장한 친구들이었다. 부모님의 불화, 가정폭력, 이혼, 강압적인 부모님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에 비싼 옷과 비싼 운동화를 입고 다니던 친구들 대부분이 평탄하지 않은,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잘못된 길을 선택했던 게 아니었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추측해볼 따름이다. 
 
"생각이 큰 사람은 듣기를 독점하고, 생각이 작은 사람은 말하기를 독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크게 생각할수록 크게 이룬다」 162P, 데이비드 슈워츠, 나라 출판사 - 
 
슬플 때 슬퍼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어려울 때 어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 정말 큰 사람이 가진 내면의 자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생각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의 차이는 듣는 능력에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결과적으로 누구와 사귀고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준이 된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 아이의 미래가 눈부시게 빛나기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으로 인해 큰 리더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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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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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작게 보이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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