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교육연합신문=양원석 기자] 

<사진: 손지선(서울 창동중 교사)> "너는 왜 이리 수업 시간에 흥미도 없고 무기력해보이니?" "영어가 별로 재미없어서요." 수업 시간에 책도 잘 펴지 않고 아무 것도 적지 않는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자주 듣는 대답이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과목은 나에게 그다지 별 의미도 없고 어렵기만 한 외국의 언어일 뿐이다. 수업을 위해 한참 동안 고민하면서 교재 연구한 교사에게 이러한 대답은 맥이 빠질 뿐만 아니라 좌절까지 하게 한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하면서 억지로 수업하자면 아이들과 충돌을 빚기 십상이다. 이런 학생들과 하루하루 수업한다는 것은 굉장한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흥미를 일으키면서 학습동기부여까지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 맞추자!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수업을 철저히 그들의 눈에 맞추자'였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이론은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재직 중인 하워드 가드너 박사가 주장한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igence)이었다. 사람은 총 8가지 지능(논리-logical, 언어-linguistic, 성찰-intrapersonal, 친화-interpersonal, 음악-musical, 신체-bodily, 공간-spatial, 자연-naturalist) 중 특정 지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의 현실 속에서 논리와 언어적 지능이 뛰어난 학생만이 우수한 학생이라고 인정받고 음악, 신체, 공간지능이 뛰어난 학생은 음악, 체육, 미술 과목 정도에서야 인정받을 수 있고 성찰, 친화, 자연적 지능이 뛰어난 학생은 사실상 학교 현장에서는 인정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판단이 섰다.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지능을 가진 학생들은 자존감을 높일 기회가 없어서 수업 시간에 무기력하고 참여하지 않고 또는 반항까지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과 중 어떻게 하면 다양한 지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골고루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수행평가를 다양하게 실행해보기로 했다.

 

 

#1. 크게 읽고 녹음하기(Read aloud)

가장 먼저 했던 수행평가는 '교과서 크게 읽고 녹음하기'이다. 영어 교과서를 읽은 것을 녹음하여 수업 카페에 올리도록 하는 데 이때 단순히 녹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어서 자신이 읽은 녹음 파일의 배경음악으로 삼아 오디오북을 만들게 했다.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말하기인데 이런 과제를 통해 학생들은 적게는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까지 본문을 읽으면서 영어 말하기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발음에 자신을 갖게 되었어요"

수형이는 평소 영어에는 관심이 있으나 잘 하지 못해서 고민이 많은 학생이다. 이런 수행평가를 하면서 자신에게 굉장히 편안한 집에서 원하는 만큼 연습해서 녹음만 하면 된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십 번을 읽고 연습하면서 조금씩 발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향상된 발음이 마음에 들어서 본인이 자발적으로 교과서 다른 9과도 녹음해서 수업 카페에 올려놓았다. 친구들이 본인이 읽은 것을 들을 때면 긴장이 되지만 그래도 노력한 결과물이 친구들에게 인정받을 때 그동안의 수고를 다 보상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음악이랑 영어랑 무슨 상관이죠?"

예고를 지향하는 지은이는 대하기 쉬운 학생이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영어가 싫다고 말하면서 까다롭게 나올 때면 막막하곤 했다. 지은이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교과서 읽기 수행과제에 자신이 만든 배경 음악을 넣을 수 있다는 말을 굉장히 참신하게 받아들였다. 작곡과를 지망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은이에게는 특별 주문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더라도 지은이는 본인이 작곡하고 연주한 노래를 녹음하여서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못할 것처럼 말했지만 곧 본인의 작품을 만들어왔다. 음악적 지능이라는, 어떻게 보면 영어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듯한 본인의 지능을 갖고 영어 수업 시간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영어 수업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새 수업 시간에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렇게 그간 해왔던 활동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세세하게 기록해주었고 기쁘게도 이번에 지망했던 예고 작곡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전해 들었다.


 

#2. 그림사전(Pictionary)

그림사전은 영어 단어를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림으로서 언어 정보를 이미지와 함께 저장하기 때문에 단어 학습 효율도 올라간다. 공간지능이 뛰어난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수업시간에 그림 좀 안 그리면 안 되겠니?"
성민이는 항상 어느 수업 시간이든 상관없이 그림을 그리곤 했다. 아무리 그리지 말라고 해도 항상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단어 퀴즈를 할 수 있도록 그림사전을 만들어오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난색을 보였지만, 곧 단어 그림을 직접 컴퓨터로 광펜을 사용하여 그려서 갖고 왔다. 수업 시간에 단어 퀴즈 하면서 맞추는 학생에게는 상품으로 사탕을 주니 너무나도 좋아하면서 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성민이의 바로 그 그림 솜씨이다. 이 일을 통하여 성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능있는 학생으로 인정 받아 자존감이 상당히 향상되었고 더불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영어 수업 시간에는 눈을 초롱초롱 밝히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3. 동영상 영어 교과서

교과서 내용을 완전히다 외워버렸어요

호성이는 자타공인 컴퓨터의 달인이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도 많고 게임도 아주 잘하고 그쪽 분야로는 모르는 내용이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는 항상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 있기만 했다. 자신의 지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동영상 편집 지능이 아주 뛰어난 것을 발견하고 호성이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그 중 교과서 독해 본문 내용을 컴퓨터 게임을 이용하여 동영상 영어 교과서로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호성이는 눈을 빛냈다.

그렇게 교과서 본문을 받아간 지 2주 뒤 호성이는 핼쓱해졌지만 반짝이는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교과서 4쪽 분량에 동영상 교과서를 다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약 10분간 펼쳐진 동영상 앞에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과서 내용을 완벽하게 게임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어보니 한쪽당 10시간씩 해서 40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던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수업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하니 신이 나서 춤을 춘 것이다. 교과서 동영상을 만들려면 본문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만들 수 있으니 학습적 효과도 아주 높았다고 한다. 이후 호성이는 그 지능을 인정받아 학교 예술제 동영상, 졸업식 축하 동영상까지 도맡아서 작업해냈고 결국 관련분야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아주 잘 생활하고 있다.

 

 

#4. 수업은 버라이어티 쇼의 연장

이렇게 여러 수행평가를 통해 자신의 지능을 인정받았던 학생들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의 지능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솜씨를 뽐내는 일에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데 이를 잘 이용하면 수업 시간에 장기자랑 시간도 틈틈이 가져서 학생들이 피곤하거나 힘들 때 활력소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이러한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장기자랑을 하는 친구를 보는 다른 학생들도 진지하나 상당히 즐거워하는 자세로 즐기면서 감상하게 된다.

 

 

다양한 수업방식, 학생·교사 신뢰와 학생간의 소통 어우러진 '따뜻한 교실'

이렇게 다양한 지능이 있는 학생들에게 골고루 자극을 주고 서로의 지능을 인정하며 칭찬하는 문화가 형성된 교실은 교사와 학생 간,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형성된다. 많은 작업을 함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학생의 참여를 통해 교사와 학생,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이 이루어져 교실은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다.(수업카페 주소 : http://etsamels.njoyscho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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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교육혁신] "교사·학생이 함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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