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교육연합신문=전재학 기고]

예전에 학교나 교실에는 ‘배워서 남주자’라는 슬로건이 자주 등장했다. 지금도 초·중등학교 학급의 고전적인 급훈으로 사용되는 이 글귀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자는 공동체의 금언이다. 자신의 배움을 본인만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학교에서는 사회의 빛과 소금인 큰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자 한다. 그래서 이 문구가 학생들에게 건전한 의식을 부여해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살아가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하는 교육의 수단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 교육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가히 희망적이다. 아마도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더욱 진일보해 사회적으로 이타적인 인재로 살아갈 것으로 믿는다. 실제로 수많은 인재가 묵시적인 영향을 받아서 후에 자신의 배움을 필요한 사람들과 공유하거나 나눠 주는 이타적인 삶을 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배워서 어떻게 쓸 것인가?󰡑 와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연계 질문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의식을 고취해야 하는 교육적 사명을 안고 있다.


필자가 미국 여행 중에 중남부 오스틴(Austin)에 위치한 텍사스 주립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면서 눈에 띄던 문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본부 건물 벽면에 크게 새겨진 핵심목표(Core Purpose)가 ‘To transform lives for the benefit of society(사회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도록 자신을 전환하기)’였다. ‘진리탐구, 정의 추구’등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한 대학의 목표는 지성의 전당에서 학문을 익힌 인재들이 어떤 사람으로 변모할 것인가를 짐작게 했다. 그것이 바로 ‘배워서 남주자’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라는 이 메시지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동기를 각인시킨다. 이보다 바람직한 민주 시민교육이 있을까? 역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교육의 전당다웠다.


근래에 개봉한 영화 <증인>에서 자폐아인 주인공(지우)이 변호사 순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도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료한 이 질문을 지금까지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던져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영화 <증인>은 이 대사 한 마디를 중심에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마음을 공략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진심을 녹인 대사 한 줄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해 보인다. 지우의 물음에 순호는 “노력해볼게”라고 대답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적어도 사람들이 순호와 같은 대답을 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한 곳이지 않을까?


경쟁을 위한 교육에서는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 지구상 유일한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는 공존하기 위한 지혜를 모았기에 신체적으로 더 강력한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이나 그 밖의 다른 인류를 물리치고 최후의 생존에 성공했다. 우리는 그러한 DNA를 가지고 있다. ‘승자독식 사회’나 ‘초경쟁사회’에서는 좋은 사람을 교육할 수 없다. 오직 살벌한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항상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냉철한 판단 아래 만족스런 답변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노력해볼게’라는 대답만이라도 늘 자신을 일깨우는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배워서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이 되지 않고 배운 것을 남에게 베푸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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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성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 인천제물포고 전재학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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