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교육연합신문=정유진 기고] 

국내 답사를 다녀왔지만 애초부터 서울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한일청소년 평화 교류단으로서 일본을 방문하여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하여 더 심화적인 내용을 배우고 올 예정이었지만, 한일 간 국제 정세가 악화되면서 안전 문제 상, 그리고 불매 운동의 일환으로 일본 방문이 불가피하게 취소되었다. 그래도 우리 교류단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침울해하고만 있다면 일본에 우스운 모습만 보여주는 꼴이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속한 회의로 서울 국내 답사가 결정되었고, 지금 이를 다녀와 보고 느낀 것에 대하여 보고서를 쓰려고 한다.

 

짧았던 2박 3일의 일정에서, 수요시위, 전태일 기념관, 효창공원, 민주인권기념관, 식민지 역사박물관, 국회의사당, 서대문 형무소, 광명동굴에 방문했고, 뮤지컬 <영웅>도 관람했다.

 

그 중에서 수요시위는 내가 가장 고대하던 일정이었다. 대책 회의에서 국내 답사 후보지 세 곳 중 서울을 택한 것은 수요시위에 꼭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위에는 전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시위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 때문에 또 참여해보고 싶었다. 그 때 했던 시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였다. 즐겁지만 질서정연한 분위기여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도 있지만, 그렇게 의사를 밝히고 문제를 알리는 시위에 참여하여 나중에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의 보람이란, 설명하기에 벅찼다.

 

솔직히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언제 해결될지 모른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비인간적이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 때일수록 목소리를 높여 힘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수요시위 날은 소나기가 너무나 자주 쏟아져서 너무나 습하고 힘들었다. 천막의 가장자리에서 물벼락을 맞기도 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여러 학생들의 연설을 들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는데,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했다. 발언을 하는 사람 중 중학생도 있었는데, 우리는 시간 때문에 발언 신청을 하지 못했지만 그 학생을 보고 참 대단하고 용기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 8월 4일,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제 다들 너무나 연로하시다. 증언을 하고 피해 사실에 대해 목소리를 낼 분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런 청소년들이 나서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피해자도 남아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라도 기억해서, 하늘에서 보고 계실 수많은 할머니들을 위해서, 그리고 현재도 고통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생겨서는 안 될 비슷한 피해자들을 위해서, 잘못된 일에 대한 사죄를 꼭 받아내야 할 것이다.

 

처음 일본 방문이 취소되었을 때는 마냥 아쉽기만 했는데, 서울에 답사를 다녀오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고야나 도야마에서는 근로정신대 또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깊이 배울 수 있었겠지만, 서울에서 다양한 박물관과 기관을 방문하면서 일제 강점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대사,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도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국회의사당에 간 소감은 더 특별한 것 같다. 국회의사당에는 처음 가 본 것이었다. 가서 국회가 하는 일과 정치에 대해 배웠는데, 솔직히 교과서를 통해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뭐 엄청나다거나 그런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사당에서 본회의를 방청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레기 시작했다. 살면서 국회 본회의를 방청할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야 했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그 날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망한 마음이 너무나 컸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으로서 현재 국회의 역할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의 문제점들을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의회의 모습을 바꿔나가야 할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국회를 방문함으로써 단순한 역사 답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박물관이나 이렇게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해설자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거니 다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민주인권기념관의 해설자 이현주 사무국장님은 달랐다. 알고 보니 그 분은 박종철 열사의 절친한 후배였다. 해설자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박종철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왔고, 그의 업적 위주가 아닌, 인간 박종철을, 사람대 사람으로 이야기 해주셨다.

 

해설 일을 맡으신지 오래됐을 것 같은데, 사무국장님은 그가 받은 고문에 대해서 얘기할 때 눈빛이 흔들리셨고, 시민들이 없었다면 그의 죽음을 밝히지 못했으리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렇게도 인간적인 설명은 처음이었다. 나도 종종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분의 말을 듣고서는 박종철이라는 사람과, 그가 했던 일, 그리고 그의 죽음이 헛되지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답사를 대체한 서울로의 국내 답사는 끝이 났다. 시간 관계 상 자세히 둘러보지 못 해 아쉬운 곳도 있었고, 정말 인상 깊어서 뇌리에 박힌 곳도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힘들게 돌아다녔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 그리고 또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우선 해결되지 않은 근로정신대 문제(이에 더하여 성노예제 피해자 문제)가 이 답사가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제가 식민 지배를 하던 시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역사도 살펴보았다. 그 모든 것들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역사는 전부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념관에서 나왔던 이름이 다른 박물관에서 나오기도 했고, 넓은 맥락에서 봤을 때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했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 된다. 어떠한 문제를 깨끗이 청산하지 않고 이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지 않는다면,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일이 또 다시 발생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현재 있는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청소년이라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답사까지, 직접 하면서, 오히려 청소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앞장서야한다. 우리가 힘써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왔다. 그들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의 중심에 있는 피해자들을, 우리가 기억하고, 함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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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고] 함께할게요, 기억할게요 - 광주숭일고 2학년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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