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김수아 기자]

 

1759년(영조 35년) 6월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下권의 반차도 그림.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한 책이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강화도 왕실도서관인 외규장각에서 약탈한 도서는 1978년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297권을 발굴해 공개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반환 협상은 1991년 서울대가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정부에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1993년 9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해 '휘경원 원소도감의궤' 上권 1책을 돌려주고 정상회담에서 '상호교류와 대여'의 원칙에 합의하면서 쉽게 해결되는 듯 했다.


당시 프랑스 측은 고속철도인 테제베(TGV)의 한국진출과 관련해 도서반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협상은 곧바로 난항에 부딪혔다. 한국정부는 국내여론 등을 감안해 '영구대여' 방식으로 반환받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프랑스 측이 미온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2001년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는 대신 국내 다른 문화재를 주는 '맞교환 방식'에 잠정 합의했다가 국내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이 2007년 취임한 뒤 프랑스 측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국과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정부도 '영구대여'라는 용어를 포기하고 '일반대여' 방식을 추진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프랑스가 국내법상 문화재 반출에 '영구대여'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점을 정부가 반영한 것이다.
결국 양국 정상은 지난해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 때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대여갱신방식으로 한국에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이후 지난 2월 양국 정부가 올해 5월 31일까지 반환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기나긴 협상은 끝을 맺었다.

 

 

외규장각 의궤, 145년 만에 고국 귀환


병인양요때 빼앗긴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이번 의궤반환은 작년 11월 12일 G20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간 합의에 따른 것이다. 우리 정부와 프랑스는 양국 정상간 합의 이후 '정부합의문' 발표와 구체적 이관 실행을 위한 '약정서' 체결 등의 절차를 거쳤다.


4월 14일 1차로 반환된 의궤는 유일본 8권을 30권을 비롯해 75권으로 5월 27일까지 4차례에 걸쳐 297권 전체가 돌아온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외규장각 의궤 반환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세월만큼이나 외규장각 도서 환수과정이 길고 힘들었다"면서 "비록 대여형식이지만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프랑스정부가 외교상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혜택으로 실질적인 환수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반환된 1차분 의궤 75권은 온습도 조절기능을 갖춘 특수 컨테이너에 담겨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왔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됐다.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혼례 등 국가 중요행사가 있을 때 준비과정, 주요 의례절차와 내용 등을 그림과 글씨로 남긴 일종의 보고서로,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번에 돌아온 의궤는 대부분 임금이 보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이른바 '어람용' 의궤다.


그러나 이번 외규장각 위궤 반환에 대해서는 반환형태 및 절차 등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도서 전체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이전받는 것이 아니라 5년 단위의 임대라는 점 때문이다.


정부는 5년 단위 임대지만 자동으로 기간이 연장된다면 사실상 영구임대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학계와 문화계에서는 약탈당한 문화재를 상대국가로부터 5년마다 임대기간을 연장 받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비난여론에 대해 정 장관은 "대여형식은 양국의 입장과 국제적 관례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실질적인 환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여형식을 받아들임으로써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의 다른 약탈문화재 반환가능성을 완전히 막는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번 대여는 외규장각 의궤에 한정된다"며 "다른 문화재에 대해서는 이번 방법을 선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의괘 반환 5년 뒤 돌려줘야 하나?


이번 외규장각 의궤 반환은 5년 단위의 대여 형식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번 반환이 자동갱신 확률이 높은 '실질적 환수'라는 입장이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에게 "양국 간의 입장과 국제적 관례를 고려한 가운데 이뤄지다보니 이러한 형식으로 하게 됐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환수라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외규장각 도서가 전부 들어온 뒤 영구임대나 소유권 반환 등 실질적인 '완전 환수'를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상찬 교수는 "임대 형식을 떠나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 환수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이 한 등급 올라갔다고 본다"면서 "소유권 및 관리권 문제는 희망을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은 작년 11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약탈해 간 조선왕조의궤 등 문화재급 도서 150종 1205책을 반환하는데 합의했다.

 

환산할 수 없는 '외규장각' 도서의 가치


의궤는 국가의 주요 행사에 대한 모범적인 전례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이를 참고해 예법에 맞게 의식을 행하고자 제작됐다.


또 국장과 같은 예기치 못한 국가 중대사를 당했을 때 원활하게 행사를 치룰 수 있는 실용적인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


의궤에 기록된 주요행사를 보면, 왕실의 장례나 혼례, 세자 책봉 등 국가의 주요 행사를 비롯 중국사신의 영접, 무기 제조, 행사 때 악기의 조성, 궁궐 건축, 공신 녹훈, 실록 편찬 등 국가 및 왕실의 주요 행사 전반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의례 및 준비 과정을 날짜에 따라 기록한 각종 공문서, 업무 분담, 담당자 명단, 동원된 인원, 소요된 물품, 경비 지출, 유공자 포상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또 필요한 경우 행사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그린 반차도(일종의 행렬도), 건물 및 기계의 설계도, 각종 기물의 도설 등을 덧붙여 행사의 구체적인 사항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의궤는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 행사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들의 실명은 물론, 각각 물품에 사용된 자료의 수량 및 비용, 실제 들어간 물품과 사용 후 남아서 되돌려 준 물품의 목록 등 세밀한 기록정신이 돋보인다.


한편 도감(都監:행사를 주관한 임시기구)은 행사의 전 과정을 날짜순으로 정리한 기록을 만들고 이를 정리해 제작했다. 도감의 명칭은 행사에 따라 다른데, 가령 왕실의 혼례는 가례도감, 왕세자 왕비 책봉은 책례도감, 또 황실의 장례는 국장도감(왕, 왕비), 예장도감(세자 등) 사신 영접은 영접 도감, 궁궐 건축은 영건 도감 등이 있다.


제작 부수는 5부에서 9부를 만들어, 국왕 열람용으로 1부를 바치고, 나머지는 분상용 즉, 보관용으로 쓰였다.


또 어람용의 경우 왕에게 직접 올려, 정조대 이후 창덕궁 내 규장각에 보관했는데, 1782년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치한 이후, 이곳에 보관됐다.

 

외규장각 도서

 

외규장각이란?
외규장각이란 규장각의 도서 중 영구 보존의 가치가 있는 책들을 별도로 보관한 외곽 서고이다. 1782년(정조 6) 2월 정조가 강화도 행궁지에 설치한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으로 규장각은 학문연구, 도서관, 출판 등의 기능을 겸한 왕립기관으로 1776년 창덕궁에 설립됐다.
외규장각의 보관자료를 보면, 역대왕의 글과 글씨, 어람용 의궤 및 주요 서적, 왕실 관련 물품(교명, 책보)등이 있으며, 철종 연간 외규장각 소장 도서 수량은 약 6000권에 달한다.

 

의궤란?
'의례 혹은 의식 의 궤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국가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과정과 주요 의례 절차, 내용 등을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의궤는 조선 전기 태조 때부터 편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임진왜란 중 유실되어 현존하지 않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선조 334년 (1601)제작된 의궤인 '의인왕후 빈전혼전도감의궤'와 선조의 첫째 정비인 의인왕후 박씨의 장례 기록을 담고 있는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1601)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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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 145년… 11시간 날아 고국 땅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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