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교육연합신문=김수아 기자]

 

일본 도우쿠현을 강타한 대지진. 이런 대참사에도 일본인들은 차분한 태도를 보여 놀라움을 주고 있다.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민감하다"고 말한 바 있다.


재앙수준의 지진피해 속에서도 일본인들이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은 민족성이라기보다 교육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어릴 때 일본의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는 차례, 순서를 뜻하는 '준방(順番)'이라고 한다. 이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다'는 이른바 '메이와쿠' 문화의 근간으로 일본인들은 가정교육을 통해 어릴때부터 이런 습관을 몸으로 배운다.


어릴때부터의 교육으로 일본인들의 뇌리에는 메이와쿠 가케루나'(迷惑を 掛けるな)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관념이 형성되는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일본의 이런 모습은 장례식장에서도 볼 수 있다.


대성통곡하지 않는 일본 특유의 죽음에 대한 인식속에도,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메이와쿠 문화'가 깔려있다. 현재 일본의 47개 도도부현에는 '메이와쿠 방지 조례'라는 것이 있어 '남에게 현저한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같은 절제된 모습이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상당히 다르기에 무조건 따라서 배울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재난 속에서 차분한 모습을 보이며 질서를 유지하는 침착한 태도는 분명 그 자체로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러나 일본 지진피해에 대한 우리의 모습이 언젠가부터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지진피해를 거의 받지 않은 일본 다른 지역은 동북부 지진을 먼나라 이야기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저 내게 피해가 오면 어떡하지 하는 근심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앞장서서 성금을 모금하거나 구호물품이 산처럼 쌓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되지만 내가 남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 메이와쿠 문화의 숨겨진 내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하철역에서 추락한 승객을 구한 '이수현 열사'가 영웅이 될 수밖에 없다. 남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거는 '무모한' 행동은 일본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나라에서도 보이지 않는 국민성금과 추모음악회가 우리나라에서 등장했다. 지난 겨울 전국 축산농가를 폐허를 만들고 농민들을 절망으로 내몰았던 구제역 확산사태 속에서 이들을 위한 성금모금액은 채 1억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지진피해에는 한류스타와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 거액을 선뜻 내놓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학교에서도 성금을 모금한다.


구제역으로 축산농민들이 평생 쌓은 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의연했던 우리국민들이 일본 지진피해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애정을 보내고 있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가리치는 교과서가 일본의 각 학교에 보급되고, 아직도 위안부만행을 부인하는 일본이다. 속죄라는 단어를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국민들은 한없는 '성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아이티 대지진, 칠레 지진참사 등 불과 몇 년 사이 연이어 지구촌을 강타한 재난을 마주하면서 우리국민들이 이처럼 뜨거운 애정을 보여줬던 적이 있었던가?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전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자랑이며 정신문화이다. 일본의 아픔을 나누자는 그 따뜻한 마음이야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느 누구도 이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정도라는 것이 있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일부에서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냄비근성'이라 폄하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 또한 부적절한 의견이다. 남을 돕겠다는 마음을 폄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도와주고 따뜻한 마음은 잃지 말되,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 내면의 숨겨진 진실을 꿰뚫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만큼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과하다. 더구나 아직도 그들의 죄악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일본에게 무제한의 애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이웃이 고통을 당하는데 그런 것을 가지고 따져서야 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쓰나미참사와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든 아이티 참사 때는 왜 성금을 거두지 않았고, 왜 추모음악회를 열지 않았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구제역으로 신음하는 농민들을 위해서는 그리도 굳게 지갑을 닫았을까?


이제 그만하면 됐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은 원전 안전성과 취약한 내진설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대책마련이다. 일본 지진참사를 통해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대재난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 점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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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메이와쿠'에 열광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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