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담양금성초 교사 장옥순]

 

아침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동네 아파트를 지나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새벽이라 살짝 차가운 아침 공기지만 산뜻하고 맑은 아침을 여는 마음으로 해돋이와 함께 나선 길. 5천 걸음 쯤 걷는 아침 산책길의 기쁨은 하루를 여는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가로수 길을 지나 조선대학교 앞길을 지나 반환점을 돌 때였습니다.  장미를 올려놓기 위해 설치해 놓은 구조물 앞에 어떤 노인이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잡풀을 뽑아주는 좋은 일을 하는 줄로 알고 감동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까만 봉지에 장미 나무를 뿌리째 뽑아 넣은 노인의 모습을 보던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직업 본능이 발동하고 말았습니다."그 장미 나무 뽑으시면 안 되는데요!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구청에서 일부러 만들어 놓은 건데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은 까만 봉지에 장미 나무를 가슴팍에 안고 신호등마저 어긴 채 도망가듯 총총히 내달았습니다. 족히 여든은 넘어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저 연세가 되어서도 공공시설물을 훼손할 생각을 하실까?  나 역시 늙어가는 입장이라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생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는 또 다른 풍경을 보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조금 전에 본 노인보다 더 젊어 보이는 분이었지만 나이는 들어 보이는 분이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뭔가를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건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였습니다. 산책길을 청소하는 직원이 따로 있는 길인데 이른 아침이라 아직 출근을 안 한 모양입니다. 그분은 부지런히 쓰레기를 담으며 산책길을 깨끗이 치우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 아무런 대가도 없는 일이건만 그 분은 매우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을 비우려고 나선 아침 산책길인데 극명하게 대비 되는 행동을 보여준 두 노인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나이를 먹는 일은 버리는 준비를 하는 일이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 생각하고 정리하며 겨울나무처럼 빈 가지로 설 준비를 해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고 보니 살아가는 데는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입맛도 변해서인지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음에 놀랍니다. 아침 한 끼 식사를 하지 않아도 배고픔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요즈음입니다. 몸도 나무처럼 겨울을 준비하는 탓이리라고 생각합니다. 퇴화 하고 있는 몸에 젊은 날처럼 씩씩하게 잘 먹으면 소화에 무리가 갈 것은 당연합니다. 음식을 줄이니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습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 일은 욕심을 줄여가는 일이 분명합니다. 빈 가지로 설 준비를 하면서 놀라운 것은 일에 대한 달관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이고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졌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인생의 열매를 모두 내어줄 준비를 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교직을 선택하여 걸어온 길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감사함으로 행복한 나날입니다.

 

교직이 힘든 업종이라고 푸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남기는 이 일은 그 무궁함을 견줄 말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친 제자가 세상에 나아가 퍼뜨릴 민들레 씨앗의 번짐은 또 얼마나 클 것인지 생각하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무명교사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교직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김하는 중입니다.

 

학교 뒤 모내기가 끝난 동네 벼논에는 모들이 한창 자라는 중입니다. 딱 우리 1학년 귀염둥이들을 닮았습니다. 뭐든 줄을 서야 하고 차례를 정해주는 걸 좋아하는 모습이 줄 맞추어 늘어선 벼논의 모 같습니다. 늘 줄을 서야 되는 줄 아는 귀여움에 저는 늘 혼자 웃음을 참느라 힘듭니다.

 

한참 예쁜 짓을 하는 요 녀석들이 요즈음 더 예쁜 걸 보니 저도 이제 할머니가 될 시기가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손녀 뻘 되는 작은 아가씨들의 눈웃음에 살살 넘어가는 중이니! 글눈을 뜨기 시작하더니 미주알고주알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려서 내게 안기곤 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지금 저는 1학년 꼬마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은 천상의 사랑이 분명합니다. 내가 주고 갈 열매들을, 꽃들을, 인생의 지혜들을 남김없이 쏟아 붓느라 하루해가 짧습니다. 방금 하교 인사를 하고서도 달려와서 꼭 껴안고 떨어지지 않는 고 예쁜 모습에 오후의 노곤함이 싹 달아나 오늘 일기를 남깁니다. 오늘 하루는 참 잘 살았구나! 안도하는 중입니다.

 

그 순결한 사랑 고백에 감전 되어 내일은 얼마나 더 행복한 시간을 나눌까 생각 중입니다. 사랑도 표현해야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저보다 더 사랑꾼입니다. 저는 지금 사랑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니체가 말한 최상의 인간은 어린 아이입니다. 우리 1학년 아이들은 제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승입니다. 

 

"애들아!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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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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