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김현균 기자]

 

허수경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들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번 시집은 ‘차가운 심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빌어먹을’ 이라는 거친 언어의 형식에 빌려 담았다.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라는 시인의 말은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나는 그렇게 있다 너의 눈 속에
꽃이여, 네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너를 바라보던 내 눈 속에
너는 있다
다람쥐여, 연인이여 네가 바삐 겨울 양식을 위하여 도심의 찻길
을 건너다 차에 치일 때
바라보던 내 눈 안에 경악하던 내 눈 안에
너는 있다

 

‘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중에서

시인은 이미 지나간 것들과 ‘지금,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의 정서를 담담한 언어로 풀어낸다.


도로 위에 죽어가는 다람쥐의 눈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보고, 또 그런 자신의 눈 속에 존재하는 다람쥐. 피던 꽃들이 시들어가며 죽어가는 모습, 내일이면 도살될 돼지의 검은 털 속,  그들의 눈 속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행위는,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이자, 모든 살아가는 것들을 사랑해야 하는 시인 본연의 책무를 상기하게끔 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고 시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일, 그것은 일종의 그들에 대한 위무를, 즉 시인은 그들 자신이 돼 차가워져 가는 심장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중에서

염소나 늑대가 아닌 양으로 태어나게 한 것,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이 무력한 생명의 탄생. (‘카라쿨양의 에세이’)

 

말을 못 하니 말하는 자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허망한 죽음에 대해 시인은 그 말 못하고 이름 없는 존재가 돼 슬픈 눈으로 나지막이 뇌까릴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너의) 차가운 심장’. 이토록 슬픈 욕설을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을까. (허수경/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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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빌어먹을, 너의 차가운 심장…‘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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