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김현균 기자 ]

 

바슐라르는 ‘집’을 행복한 공간, 소유되는 공간, 적대적인 힘에서 방어되는 공간, 사랑 받는 공간, 이러한 공간들의 대표적인 표상 중 하나로 본다. 우리가 집을 쉼터에 비유하는 것 역시 그것이 주는 엄마의 품속과 같은 편안함 때문이다.


여기 집에서는 도무지 편안하게 잘 수 없어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트렁커’(Trunker)가 있다.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그 비좁은 트렁크에서 새우잠을 자는지 보통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들에게 트렁크는 마치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와 같은 안온함을 전한다.


트렁크에서 잠을 잔다는 특별한 사실을 제외하고는 평범해 보이는 ‘이온두’는 사실 공황장애에 시달려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슬트모(슬리핑 트렁커들의 모임)’의 정회원이다. 어느 날 온두가 잠을 자는 공터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름’이라는 남자가 등장하면서 그녀의 생활은 조금 더 특별해진다.

 

고백하자면, 나도 모르게 입이 열리고, 내 안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잘 모를 때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젯밤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듣던 름은 나름대로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준 편이었다. (54~55면)

 

온두는 매일밤 름과 함께 그가 개발한 ‘치킨차차차’라는 진실게임을 하면서 과거를 하나씩 고백하게 된다. 처음 그녀는 거짓말을 통해 자신에 대해 감추려 하지만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그 게임에 임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또 게임을 통해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서로 위무하고 치유받게 된다.


온두가 유능한 유모차 판매원이라는 사실과 ‘트렁커’라는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보호받는 공간’이라는 의미는 중요하다.

 

소설은 집이라는 공간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의미와 느낌일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트렁크로 불릴 따름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부끄럽고 숨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역시 말이다.


작가는 “잊고 싶은 기억과 대면하고자 하는 노력만이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치유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상처의 공론화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 홀로 그 상처를 이겨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누군가는 차마 그것을 마주하지 못하고 숨거나 피하고 만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에게 ‘치킨차차차’ 게임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은 혹시 그럴지도 모를 당신에게 ‘치킨차차차’ 게임을 권할 것이다. (고은규/문학에디션 뿔)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책 소개] 치유의 요람 ‘트렁크’…‘트렁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