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위클리피플=이준영 기자, 하여라 기자]

 

이 시대의 휴먼 리더

 

사람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똘똘 뭉친
(사)피플 투 피플(PTPI) 한국본부 ‘김길연’ 총재

 

김길연 (사)피플투피플(PTPI) 한국본부 총재/서경대 교수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깊이 가려면 굽이 돌아가라./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아프리카 속담으로 이어져 오는 이 구절은 개인주의, 스피드가 곧 시대적 가치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우리에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늦더라도 주위를 돌아보며 ‘함께’ 가자고 독려할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과 사람의 상호이해를 통한 세계의 평화 구현을 목표하는 민간외교단체 ‘피플 투 피플’이 바로 우리가 놓치는 이 가치들에 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피플 투 피플’의 첫 여성 리더로 선출된 김길연 총재를 만나 ‘피플 투 피플’ 이야기와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그녀의 삶을 되돌아 봤다. _취재 이준영, 하여라 기자/ 글 하여라 기자 

 

냉전시대에서 평화를 외친 PTPI, 중심이 되다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며 국제 평화 활동을 전개하는 사단법인 피플 투 피플(PTPI) 한국본부는 여성 총재를 선출하여 창단 48년 만에 첫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김길연 총재는 ‘(사)피플 투 피플’ 본연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고 시대에 맞는 사회 책임과 역할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피플 투 피플은 6.25전쟁과 분단이라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태어난 단체입니다. 그래서 피플 투 피플 활동들은 필연적으로 시대적 상황들이 반영돼 있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맞는 평화적 활동이 전개될 수 있도록 여성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지역에 맞는 활동들을 연구개발 하겠습니다.”

 

 

초기 (사)피플 투 피플 한국본부는 한반도 분단 직후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과 일반 국민 사이에 쌓인 정서적 갈등을 줄여 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는 유엔군에게 한국의 따뜻한 문화들을 전파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는 이 역할 외에도 외국인 근로자 보호와 다문화 가정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시대에 맞는 역할을 능동적으로 찾아 국제 사회 평화에 기여한다. 피플 투 피플은 1956년, 아이젠하워 전(前)미국 대통령이 냉전의 시대를 직접 겪으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든 단체이다. 이 소중한 바람은 한국 피플 투 피플 설립의 씨앗이 되어, 한반도 갈등 절정기인 1965년 춘천챕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김길연 총재는 이미 8년간 부총재직을 역임하면서 실무적인 일들을 많이 경험한 상태다. 한 번도 여성 총재가 나오지 못 한 단체에서 김길연 총재가 선출될 수 있었던 이유도 8년 간 열심히 활동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뼛속까지 ‘민간 외교관’

 

 김길연 총재는 (사)피플 투 피플과 인연을 맺기 전부터 이미 뼛속까지 ‘민간외교관’이었다. 서경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김 총재는 학생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며 한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소개해 왔다. “국문학 석사를 끝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날 학교로부터 호출을 받았어요. 외국인 학생들이 국어 수업을 외국 교수들한테 받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었죠. 개인적으로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는데 멈추지 않고, 그 아이들을 제2의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 학생들이 친구들과 가족에게 한국을 소개할 텐데, 그게 다 한국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녀의 못 말리는 민간 외교관 활동으로 인해 일어난 이야기도 많다. “한 외국인 학생은 <대장금>을 보고 한국이 좋아져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대장금>의 무대가 제주도여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멋진 제주도의 풍경과 드라마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하니 25만 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대부분 넉넉하지 못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라, 개인 당 20만 원 밖에 낼 수 가 없었습니다. 나머지 비용은 내가 보태 학생들이랑 제주도를 돌아보고 왔지요. 한 번도 바다 구경을 하지 못한 중국 대륙에서 온 학생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 때 정말 보람찼습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
 
 김길연 총재는 올해로 60세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주역의 세대이자, 가난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불우한 세대이기도 하다. 김 총재 역시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대학교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아들을 얻고자 줄줄이 딸만 낳은 집에서 늦게 얻은 남동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던 김 총재는 그래서 인지 어렸을 때부터 당차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줄 아는 현대적인 여성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3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교장실과 교무실에 꽃을 꽂아 학교 내에서 유명 인사였다. “꽃을 매일 학교에 가져다 놓은 건 나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루도 안 빠지고 꽃을 갖다 놓으니 나중에는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길연아’ 불러 꽃이 어느 산에 많은지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직접 선생님 집에 초대해 꽃을 꺾어가라고 배려도 해 주신 선생님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3년간의 노력은 자신의 삶에서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대학 공부를 꼭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37세에 정말로 지켜 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특별활동을 통해 준비한 웅변 실력을 무기로, 집안 친척 아저씨에게 부탁해 지역 국회의원 찬조 연설을 맡았다. 찬조 연설은 주로 농부들이 일을 나가기 전인 이른 새벽, 점심시간, 저녁 식사가 끝난 늦은 밤에 이렇게 세 번 진행되었다. 자연스레 자정이 넘어서 끝이 나고, 새벽 4시에 시작되는 고된 일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연설 활동을 하니 지칠 줄 모른다는 의미에서 ‘소련제(製) 탱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약회사 취업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처럼 김 총재는 자신의 삶에서 진짜 주인공이 되려고 항상 기회를 만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칠 줄 모르는 소련제 탱크 

 

 ‘소련제(製) 탱크’의 성능은 아직도 이상 무(無)다. 김길연 총재는 현재 (사)피플 투 피플 외에도 서경대 교수, 문인(文人), 민주평화 통일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찰발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치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라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무엇이든지 신나게 일을 한다는 그녀.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김 총재의 전화벨이 울렸다. “맡은 일이니까 잘 해야죠. 항상 그렇게 생각 합니다”라며 에너지 넘치는 통화 내용이 기자의 귀에 꽂혔다. 맡은 일은 뭐든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열심히 하게 된다는 김 총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게 믿겨지는 순간이었다.

 김길연 총재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가족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군(夫君) 되는 이범식 씨는 평생 약사의 길을 걸어왔다. 대학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부군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부가 두 개의 약국을 운영하던 시절에, 부군은 약국하나를 정리하면서 까지 김 총재의 대학공부를 도왔다. 김길연 총재 역시 부군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적극 동참한다. 김 총재는 부군이 쓴 책 <뚜나바위>를 작가 실력을 발휘해 직접 오페라 극본으로 만들어, 부부가 함께 오페라 공연을 열기도 했다. “가족에게 무엇을 하라고 다그치기 보다는, 가족 개개인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면 갈등을 일으킬 일이 별로 없습니다.” 딸과 아들을 키우는데도 그 방법은 주효했다.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 지금은 의대교수와 미국 명문 약학대학원을 다니는 자녀들이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봉사는 생활입니다

 

 

김길연 총재의 삶 자체는 (사)피플 투 피플의 지향점과 매우 닮아 있다. 공동체의 삶을 중시하고, 개인도 민간 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국제 사회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바로 (사)피플 투 피플과 김 총재의 삶이 닮은 점이다. “봉사라는 것을 본인이 어느 선까지 올라 온 다음에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활 속에서 공동체를 중시하고 봉사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쓰레기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좋은 예죠.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고 모두가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했으면 좋겠습니다.” 은퇴 후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김길연 총재. 그녀의 바람은 기필코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든다. 이미 김 총재의 삶이 계속 그렇게 흘러 왔지 않는가.

 

profile
[학력]
국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수료
서경대학교 문학 석사 취득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 박사학위 취득

[경력]
現피플 투 피플 세계본부 이사, 한국본부 총재
現서경대학 교양학과 겸임 교수
現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現통일부 통일 교육위원
現사)국가경영전략연구원 운영이사
現사)지구촌 평화연합 공동대표
現경찰청 경찰발전 위원회(동작서 위원장)
現 한국문인협회 회원
現 소월기념사업회 부이사장
現 수필가, 시인

[저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수필집) 외 공저 다수
외국유학생을 위한 서경한국어 회화, 문법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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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플투피플 김길연 총재 특별인터뷰] 이 시대의 휴먼 리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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