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석윤찬 기고〕

교실에서 우리는 자주 비슷한 장면을 마주한다.
아이는 교과서를 펴고 고개를 숙인 채 줄을 따라가며 읽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읽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을 물으면 답이 비어 있고, 문제를 풀게 하면 엉뚱한 선택지를 고른다. 이때 교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 아이는 읽지 않은 것일까,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읽는 척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해력의 문제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해력이 더 이상 국어 한 과목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문장제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 사회 교과서의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과학 실험 절차를 해석하는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신뢰도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거의 모든 학습은 문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문해력은 특정 교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전반을 떠받치는 기초 역량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의 문해력을 어떻게 보아 왔을까. 대체로 결과 중심이었다. 시험 점수, 독후감, 발표, 수행평가, 교사의 관찰 기록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물론 이런 지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으로는 읽기의 과정을 충분히 볼 수 없다. 문장을 천천히 읽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읽기 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낱말은 읽지만 문장 의미를 통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오히려 매우 신중하게 읽는 좋은 독자일 수도 있다. 반대로 빨리 읽는 아이가 반드시 잘 읽는 것도 아니다. 빠르게 훑으면서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정답을 맞혔는가만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읽었는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선추적기술은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선추적은 아이의 읽기 결과가 아니라 읽기 과정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학생이 화면이나 글의 어느 부분을 오래 보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느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지, 어떤 순서로 정보를 탐색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읽기의 흔적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물론 시선추적기술이 교사를 대신해 문해력을 자동 판정해 주는 마법의 도구는 아니다. 교육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아이의 읽기 행동은 컨디션, 배경지식, 과제 난도, 정서 상태, 수업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되읽기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수 있고, 다른 학생에게는 줄을 놓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시선 데이터는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단서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교육적으로 읽어 내는 교사의 전문성이다.
그럼에도 시선추적기술의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 교사는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와 ‘실제로 읽고 있는 아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교실 안에 20명, 30명의 학생이 있을 때 개별 학생의 눈 움직임까지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선 데이터는 읽기의 미세한 흔적을 보여 준다. 어떤 학생은 첫 문단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어떤 학생은 핵심 문장을 건너뛰며, 어떤 학생은 문제의 선택지를 먼저 훑고 본문을 대충 읽는다. 이런 정보는 단순한 연구자료가 아니라 수업 설계와 피드백, 상담의 언어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보자”는 말은 흔하지만 학생에게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반면 “너는 제목과 첫 문단은 오래 보았지만, 문제의 조건이 있는 부분은 빨리 지나갔구나” 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멈추기보다 앞뒤 문맥을 먼저 보자”와 같은 피드백은 훨씬 구체적이다. 시선추적기술은 문해력 지도를 태도 중심의 지시에서 전략 중심의 지도 쪽으로 옮겨 갈 수 있게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의 문해력 담론은 때로 지나치게 무겁고,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AI 시대이니 새로운 기술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깊은 이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들인다고 곧바로 읽기 능력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읽기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일이다. 문해력은 글자를 읽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미를 연결하고, 맥락을 추론하고,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고, 스스로 이해를 점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미세하다.
그래서 이제 문해력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실제로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시선추적기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그것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학생의 읽기 과정을 더 면밀히 보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며, 더 정확하게 돕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문해력 교육은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하나는 인간 교사의 해석력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던 학습 과정을 드러내는 기술이다. 교사는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의 좋은 교사는 아이의 답안지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읽기 과정까지 읽어 내는 사람일 것이다.
문해력의 미래는 더 많은 시험지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가 한 문장을 읽을 때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되돌아가며 무엇을 놓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석윤찬
◇ 서울대 전기공학부
◇ 비주얼캠프 대표
◇ 시선추적(Eye-tracking) 기술 분야 창업가
◇ AI 기반 시선추적 소프트웨어 “SeeSo” 개발
◇ 문해력코스웨어 리드포스쿨 공급
◇ 기술혁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