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와 민주화운동 거목 최형우 前 6선 의원 별세…장례위원장 김민석·장동혁·정대철·김덕룡·권노갑
장례위원장에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장·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최형우 전 6선 국회의원·전 내무부장관·정무1장관이 숙환으로 지난 10월 24일 오전 3시 30분, 입원 중이던 중앙보훈병원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일원동 소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20호실에 마련되었고, 영결식(발인)은 10월 27일(화) 오전 7시 장례식장 지하 1층이며,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이다.
대한민국헌정회장, 4.19혁명공로자회장, 민주화추진협의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장·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공동장례위원장은 김민석 민주당 대표·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장례집행위원장은 안경률 전 3선 국회의원·홍기훈 헌정회 사무총장, 대외협력위원장은 김희정 국회의원(국회교육위원장)·정병국 전 5선 국회의원(전 문광부 장관)이다.
장례위원회는 국민의힘 현 국회의원 전체, 고인과 의정활동을 함께한 8·9·10·13·14·15대 국회의원 전체(헌정회원), 종교계 및 사회 지도자, 민주화추진협의회·김영삼민주센터·민주동지회·민주산악회 임원 전체, 과거 보좌진 등으로 구성됐다.
고인은 1935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서 태어나 부산공고를 거쳐 동국대 정외과를 졸업하였다. 가족으로는 배우자와 2남 2녀를 두고 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회장으로 이승만 정권이 장기집권을 노린 3.15부정선거에 맞서 경무대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그 후 박정희 정권 때 6.3항쟁에 참여하면서부터 야당에 투신했으며, 1970∼80년대 야당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언론과 정치권에서 최형우 전 의원을 김동영 전 의원과 함께 우형우, 좌동영이라 지칭했다.
민주화 투쟁 시절에는 고 김영삼 대통령 상도동계와 고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계 여러 동지들과 함께했다.
제8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등원한 후 제 9·10·13·14·15대 총선에 당선돼 6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제8대 초선 국회의원 시절 대정부 질의에서, 1972년 10월 유신에 의한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하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됐고 3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80년 5.17계엄 선포 직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돼 다시 한번 모진 고문으로 큰 후유증을 겪는 등 민주화운동의 투쟁가이자 피해자이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된 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았고 그 후 신한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다. 13대 국회의원 시절 통일민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맡아 불안정한 여소야대 4당 체제를 원만히 이끌어갔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며 정무제1장관 역임 당시 김영삼 당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져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두환에게는 장세동이 있고 김영삼에게는 최형우가 있는데 왜 나한테는 이런 참모가 없냐"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회원이 300만 명 이상인 거대 조직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운동본부 회장을 맡아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선후보의 당선과 문민정부 출범을 위해 노력했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민자당 사무총장에 이어 1994년 내무부장관을 역임하며 행정구역개편, 기존 소방국을 소방청으로 강화해 화재진압만 하는 소방관의 업무를 119구급차 출동으로 확대함과 더불어 소방관의 처우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장애인 불편해소를 위해 음성신호 등 체계와 보도블럭의 점자촉진판을 적용했고, 전국의 고속도로휴게소 좌변기 교체의 토대를 구축해 화장실 문화개선에 큰 기여를 했다.
2026년 김영삼민주센터는 고 김영삼 대통령 상도동계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고 김영삼 대통령을 보좌하며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고 김영삼 대통령을 도와 문민정부를 수립한 공로를 기리고자 최형우 전 장관을 김영삼 민주센터의 명예이사장으로 추대했다.
2023년 4월 국가보훈처는 고 최형우 전 장관을 4.19혁명 공로자로 인정해 건국포장을 수여해 국립4.19민주묘지에 안장하게 된다. 1992년 정무제1장관 재임 시 청조근조훈장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