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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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그린 수탉(1938년작)은 수탉의 뻔뻔스러움과 공격성, 볼품없고 어리석은 모습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장자에 나오는 <몽계지덕>은 점차 겸손하게 변화하다 못해 목각품과도 같은 형태를 지닌 수탉의 모습을 예로 들며 점차 익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지만, 피카소가 그린 수탉은 익기 전의 수탉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 치고는 엉성한 감이 있지만, '미술가가 사물의 외형을 변형시킨 이유를 알기 전에는, 화가가 그르고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섣불리 그들의 작품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어니스트 곰브리치 교수의 명언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아가멤논의 죽음 뒤에는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이 있었고, 그 죽음에 대한 복수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가족을 죽음의 굴레로 빠져들어가게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아가멤논을 죽음으로 이끈 클리타임네스트라, 그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음으로 이끄는 아들 오레스테스와 그의 누이 엘렉트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다수의 글이 반면교사를 위한 마음의 활자화인 것에 반해, 고전은 그 스스로가 나, 곧 인간 자체의 내면을 활자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글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힘이 있다. 아가멤논의 죽음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위한 복수였다는 점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는 타당성을 부여받는다. 반면에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엘렉트라는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두고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께서는 부디 나와 나의 친족인 오레스테스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이 집을 다스리게 해 주세요. 우리는 팔린 몸이라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를 낳은 그 여자가 우리를 팔았거든요. 그리고 우리 대신에 살인에 동조했던 아이기스토스라는 사내를 사들였어요. 나는 노예나 다름이 없어요. 오레스테스는 재산도 물려받지 못하고 추방되어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 아버지께서 모으신 재산은 그들이 수치스러운 환락으로 탕진하고 있습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130-137절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용납될 수 없다. 아가멤논의 선택 또한 용납될 수 없고, 마땅한 죗값을 치렀다고 봐야 옳다. 다만 고대 작품이 쓰이던 시대에서 살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역사 속 작품들이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리스 함대를 이끄는 선장이자 왕이었던 아가멤논의 선택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이란계 유목민에 속하는 스퀴타이족은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했던 유목민들의 후손이다. 스퀴타이족에 대한 일화(그들은 전투에서 죽인 자들의 머리가죽을 벗겨내서 손수건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가죽 손수건을 가장 많이 가진 자가 가장 용감한 자로 간주되었다. 적을 죽인 경험이 없는 자는 함께 술을 마시지 못하고, 이것이 가장 큰 치욕이었다. {헤로도토스 <역사> 4권 64-66장}) 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보았을 때,  아가멤논의 선택이 반드시 틀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화 중 하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친족 간의 살인이, 비록 작품 속 신화이기는 하나, 수긍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독백에서, 그들은 그들의 누이인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이 아가멤논에 있어서는 정당한 선택이었다는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께서는 그대(제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제물을 바치셨어요. 그런데도 그런 아버지의 자식들을 당신이 죽게 내버려 두신다면, 앞으로 누가 당신에게 정성스러운 제물을 바치겠습니까?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130-137절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식들에게서 죽임을 당하고, 이미 예언된 대로(아가멤논 1309절) 비극의 주인공과 함께 하데스 속으로 사라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일반적으로 가장 쉬운 관계기제라고 할 수 있으나, 모든 상황에서 납득할 만한 선택기제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살인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 친족살해에 대한 두려움과 잔인함으로 인한 고통을 통해 오레스테스는 정신이상자가 되고 끝없는 비극 속으로 빠져든다.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꿈을 꾸고, 소망을 찾는다. 배우자는 피가 섞이지 않지만, 자식은 피로 연결되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며, 마르지 않는다. 피가 아닌 것과는 섞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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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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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운명의 장난, 운명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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