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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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몇 분 있다.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상인회 회장님들이었는데, 시장에서 청과점을 하시는 분, 무인카페를 운영하시는 분, 양복과 구두를 판매하는 의류매장 대표님으로 나뉘어졌다. 이렇다 할 정도로 크게 사업을 하는 건 아니었으나, 각자 건물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으니 직장인들에 비해 적지 않은 자산을 구축하고 계신 분들인 것만은 확실했다. 기회를 포착하는 눈이 있는 분들이었다. 
 
하루는 청과점을 운영하는 상인회장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정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는데, 소도시인 밀양에서 무슨 사업을 해야 돈이 되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던 차였다.나는 별생각 없이"지역 소도시인 데다 문화예술의 거점 도시니까 인력거 사업이 어떨까요?"하고 한 마디 던졌다. 
 
"인력거 사업? 어떻게 진행하지?" 
"예전에 서울 광화문인가 어디에서 그런 사업을 하는 분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직원수도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신이라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예순에 접어드는 중년의 부부가 지속적인 인구 유출로 도시라고 부르기에도 애매모호한 밀양시 지역 시장에서 청과점을 한다는 말은, 소위 외국물 먹은 젊은 사람들이나 깔롱쟁이들에게는 재래시장에서 과일 파는 아저씨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초반에 지역에서는 나름 인지도 있는 명문사립대를 졸업한 회장님도 계셨으나 시장에서 노점을 하시는 분들이 모두 그런 학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작은 가게로 시작해서 겨우 겨우 자리를 잡은 분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들은 회장님은 달랐다. 허투루 흘려듣지도 않았고, 함부로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사업의 기회를 놓치지도 않았다. 
 
"인력거 사업? 젊은 사람들이 없는데?"
"그럼 말이 끄는 마차 사업은 어떠신지요?" 
"인근에 말을 사육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랑 하면 좋겠다. 근데 누가 끌지? 요금은? 말들이 똥을 싸면 그 똥은 어떻게 치우지? 말들이 날뛰면?“ 
 
회장님의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졌는데, 실질적인 사업 구축 방안과 더불어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 그리고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방안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회장님이 질문을 던지면 나는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갈수록 실제적인 구상이 잡히기 시작했다. 
 
말들 교육은 어떻게 하지? 교육비는? 대상은? 모집은 어떻게 하고? 노인들 비중이 월등히 높은 지역인데 젊은 사람들이 이용할 가능성은? 비가 올 때는 어떻게 하지? 도로는?

사실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생각할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이렇다 할 구상을 하고 던진 말도 아니었기에 흘려들을 줄 알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계속해서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의 인력거(혹은 마차)사업은 아직도 ing 중이다. 
 
다른 두 분의 회장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으로 기회를 보는 눈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슨 대화를 나누어도 재미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다. 이 분들과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경영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산 구축, 사업 운영, 매출 증대, 직원관리, 고객관리 등등. 그분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경험과 노하우는 내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힘과 지혜를 갖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분들을 존중했고, 존경했으며, 고개 숙여 배우곤 했다. 
 
함께 일하는 대표님은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분이었다. 아주 박학다식했고,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순전히 서류적인 면에서 보자면, 이 분의 기준치에 맞춰서 일을 성취한 경험이 내게는 거의 없었다.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진심으로 대표님을 존중했고, 존경했으며, 고개 숙여 배우곤 했다. 
 
그러나 엘리트코스만을 밟아온 대표님은 회장님들과는 달랐다. 기회를 보는 눈이 다소 부족했다. 이분이 생각하는 최고의 next plan은 좀 더 높은 직책을 제시하는 공기관으로 이직하는 것, 혹은 좀 더 규모가 큰 정부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분에게 있어 유일한 출세는 '의대 합격'이라던지 사법고시를 통과해서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상당히 똑똑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분이었지만, 세상을 두루두루 보는 눈은 부족했다. 
 
"전 팀장.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마흔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주 아기였던 아이들이 나보다 키가 커져서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간이 금방 간다." 
그는 내게 "더 늦기 전에 자기 사업을 해야 돼.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잖아. 안 그래?" 하고 이야기했다. 그것도 매우 자주. 
 
중학생이 된 이 분의 아이들은 두 학년이나 월반을 할 정도로 똑똑하고 영리했지만, 꿈은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반면에 전통시장에서 한평생 장사를 해온 상인회 회장님들은 세상의 큰 흐름이 흘러가는 방향을 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놀라우리만치 섬세하게 돈의 흐름을 볼 줄 알았고, 사업을 보는 눈이 있었다. 
 
기백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기백 : 씩씩하고 굳센 기상과 진취적인 정신. 
 
한국영상대학교 하우석 교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일도 천하게 여기지 않고 집중해서 해내고야 마는 마음의 자세"를 기백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한다거나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같은 일들도 해 본 적이 있었다. 인생이 지독히도 풀리지 않을 때였다. 어색하고 민망하긴 했지만,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사업을 해야 한다면 절대 오랫동안 그런 일들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때로는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큰 사업을 만들어내는 데 훨씬 큰 힘과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당연히 "의대"나 "법대"가 유일한 출세는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직업도 내게는 노동수입을 제공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는 자세가 만들어져야 하는 게 우선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기백 정신 말이다. 
 
최근에 있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마무리할까 한다. 
나보다 9살이나 어린, 연매출 수백억 대 중소기업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 작가님,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3,000평 규모의 캠핑형 바베큐장을 오픈하는데 좋은 인연이 될 듯해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대표이사임에도 불구하고 경영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유년시절을 거쳐 학창시절까지 지독하게 가난했던 경험 때문에 세상에 눈을 일찍 떴노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수백억 매출의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이거나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대표이사님이 소개해주신 '친한 동생'의 인스타에 들어가보았다. 그는 열심히 '노가다'를 하고 있었다. 3,000평 규모의 바베큐장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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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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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기백을 갖춘 사람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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