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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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타고 다니던 경차를 팔고 중고로 대형차를 한 대 구입했다. 경차를 구입하던 당시에는 출퇴근 거리가 10분밖에 되지 않았는 데다 하루 평균 운전거리가 10km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경차를 타고 다녀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하루 평균 100km 이상 차를 타고 다니고 아들도 점점 자라다 보니 안전상의 문제로 부득이하게 차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1인 차주였다. 무사고에 외부도 내부도 깔끔했다. 10년이 훌쩍 넘은 중고차였지만 키로수는 10만이 채 되지 않았고, 대형차에서만 맡을 수 있는 가죽냄새가 풀풀 풍겼다. 나름 중고차 시장의 영업 상술이겠지만, 폴폴거리며 타고 다니던 경차에 비하면 경주마 수준이었다. 간단하게 차량을 점검한 뒤 계약서를 쓰고 차를 몰고 나왔다. 2년간 손과 발이 되어 주던 경차는 매매상사에 넘겼다. 매매상사 대표님은 "타이어들이 F1 타이어 같네요."라고 이야기했다. 
 
새로 구입한 자동차는 역시 중고로 구입한 경차를 구매할 때의 가격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크다면 큰돈이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자동차를 구매하는 데 있어서 2~300만 원 차이는 그리 큰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났다. 안전, 정숙성, 오래된 자동차이긴 하지만 고급진 인테리어, 구매 당일까지 딜러조차도 몰랐던 구식 선루프, 게다가 오늘 이야기하고픈 심리적인 여유까지. 
 
지난해 11월에 공저가 계약되었다. 함께 원고를 쓴 분들은 사회적으로 꽤 성공하신 분들이었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할 만큼 훌륭한 분들이었다. 또 다른 공저도 2권 준비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저서도 최종 퇴고 중이라 출간을 준비 중이다. 소설을 정리하는 작업도 착착 진행되고 있고,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다. 이렇게 여유로운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느껴지는 행복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소망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때로는 자기기만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100만 부가 팔리게 될 소설책을 쓰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매일 아침 집 앞에 놓여 있는 경차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먼 훗날 마주하게 될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공과 성취에 대한 믿음, 그리고 확신은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지 않았다. 요동은커녕 작은 미동조차 느끼지 못했다. 다만 묘한 기분은 감출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고유가 시대를 넘어 전기차가 도래하는 시대에 유류비 핑계로 경차를 타고 다닌다고 말은 했지만, 경차는 내 마음의 그릇을 보여주는 듯했다. 지난겨울에는 배터리가 7번이나 방전되어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시동서비스를 다 쓰고 난 뒤에야 비로소 배터리를 교체했다. 퇴근길에 아들을 무사히 집까지 데리고 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경차였지만, 매매상사 대표님이 "타이어들이  F1타이어 같네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타이어 교체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크게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건만,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들의 영향 때문에 뭉텅이로 돈이 빠져나가야 하는 부분들 앞에서는 주춤할 때가 많았던 탓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나와서 F1타이어에 버금가는 낡아빠진 타이어를 4짝이나 장착한 2012년식 경차를 타고 장거리 출장을 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우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차를 구입한 뒤로 어지간해서는 양복을 입고 다니지 않았다. 뭔가 구색이 맞지 않고 어색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20대 중후반부터 늘 양복을 입고 다녔지만, 3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는 철부지 대학생처럼 입고 다녔다. 편하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마음의 한 귀퉁이에서는 또 다른 속삭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퇴근용이라는 핑계, 유류비 아낀다는 핑계는 그만해. 솔직해지자고. 괜히 차 바꿨다가 할부금 못 낼까 봐 두렵고, 경차보다는 승용차가 돈 많이 들 것 같으니까 겁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럼 그냥 편하게 입어. 겉만 번지르르하게 양복 입으면 뭐 해? 경차 타고 다니잖아.' 경차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주차도 편하고, 주차료도 저렴하고, 보험료도 저렴하다. 다소 위험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게 장점 투성이다. 다만 신학과 인문학의 경계선 사이에 서서 학문이 주는 오묘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오랫동안 탐구하고 연구하며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낡아빠진 경차는 가정경제에 대한 무관심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2023년을 결단의 한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뒤, 하루 만에 차를 바꿨다. 차를 바꿔야겠다. 언제 바꾸지? 내일 바꿔야겠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바꿨다. 2023년이 시작된 지 불과 보름밖에 되지 않았지만, 차를 바꾼 것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내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잘한 결단 중 하나였다고 확신할 정도로 훌륭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의도적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도 나는 책을 썼고, 글을 썼고, 강의를 다녔고, 육아를 했고, 사업을 키워나갔다. 자동차가 바뀌었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을 해야 할 때 빠른 결단이 가능해졌고, 이전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세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달라진 점이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먼지투성이의 경차를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딱히 콕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기분도 사라졌다. 출고된 지 10년도 넘은 중고차의 낡은 가죽시트에서는 퀴퀴한 냄새보다 고급 가죽냄새가 난다. 싸구려 가죽냄새와도 거리가 멀다. 이것도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놀랍게도 엄청나게 성장할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을 내 마음에 심어주고 있다. 덕분에 나는 2년 뒤인 2025년 1월에 대형 세단으로 바꾸기로 결단할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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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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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살면서 의도적 착각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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