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교육연합신문=육우균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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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은유적 표현은 ‘침대-과학’의 배치가 침대가 더 이상 가구(영토화)가 아니라(탈영토화) 이제 잠을 잘 자게 하는 과학적인 원리로 재영토화된다. 이처럼 사고는 은유에서 비롯된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멀면 멀수록 사유의 깊이 또한 무제한으로 확대된다. 그렇기에 은유적 표현을 잘하려면 낯선 것, 다른 것, 혹은 잡종(하이브리드)들과 접속해야 한다. 친숙한 것들과의 만남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본래 낯선 것과의 만남 속에서 성장한다. 낯선 환경과 만나고 그 낯선 이물질들이 나에게 질문을 하게 만들고, 동시에 그 낯섦 속에서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이다. 또한 은유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더 확연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다. 은유의 연결은 그 본질을 알아야 연결 관계가 맺어진다. 관계맺기가 은유의 핵심이다. 관계를 볼 수 있으면 맥락을 보는 것이고, 그것은 본질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은유적 표현은 나만의 유일한 것이라 나만의 색깔을 갖는다. 따라서 은유적 표현은 남이 흉내낼 수 없다. 은유는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언어의 마술이다. 
 
은유로 정의한다는 것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사물의 핵심 정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A=B지?’하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생각의 힘도 길러진다. 커다란 지적 쾌감을 준다. 마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었을 때 느끼는 감흥처럼.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옛날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의 속성에 관한 은밀한 비밀을 엿보게 하는 말을 그의 저서 『시학』에서 살짝 흘려놓았다.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상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조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다. 
‘책은 도끼다.’ 할 때 ‘책’과 ‘도끼’는 그 쓰임이 다르다. 다를수록 융합적 사고가 된다. 즉 차원이 다른 두 물건(물질)이 섞여 다시 태어난 것은 매우 좋은 창조물이 된다. 이렇게 차원의 거리가 멀수록 좋은 창조물이다. 융합적인 글을 잘 쓰려면 ‘은유적 표현’에 능해야 한다. 은유적 표현은 더 넓은 상상력을 요구하며, 더 큰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보름달이 앞산에 떠오르고 있다. 산에 기대어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어 오른다. 마치 임신한 아내의 배 같다. 따라서 이를 은유로 표현하면 ‘보름달은 임신한 아내의 배다.’가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달은 한 달에 한 번씩 윙크한다.’ 왜냐하면 달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다시 초승달로 변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재미있는 표현이고, 또한 창의적인 표현이다. 남들이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표현, 나만의 표현, 남과 다른 표현, 그것이 바로 독창적인 표현이고 그것은 은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면 은유로 정의하는 방법을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동백꽃은 봄의 순교자다.’ 란 은유적 표현이 있다. 왜 동백꽃은 봄의 순교자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 의문의 답은 이것이다. 
 
훼절을 거부하고 한 순간 꽃 송이가 툭 져버린다. 천천히 시드는 법 없이, 생의 절정을 제 무덤으로 삼는다. 바람 부는 어느 봄날을 기다렸다 그 찰나에 결연히 제 몸 전부를 맡긴다. 얼마나 열렬한 믿음의 생애였기에 그 선홍빛은 돌아보지 않고 외마디로 지는 걸까? 『이 한 줄의 가사』 (이주엽) 
 
‘길은 안전한 위험이다.’라는 은유적 표현이 있다. 왜 길은 안전한 위험이 될까? 그 의문의 답은 이것이다. 
 
길은 이미 남이 닦아놓은 것이다. 그 길로 가면 안전하다. 쉽고 빠르다. 그러나 위험하다. 고정관념에 매이게 된다. 결국 인생의 길이란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수동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가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남이 개척해 놓은 길은 안전하지만 고정관념 때문에 새로운 곁길이나 길섶, 갓길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얼어붙은 고정관념을 깨라’고 카프카는 말했다. 그것을 깨는 도끼는 바로 책(독서)이다. 그래서 “길은 안전한 위험이 된다.” 
 
‘성직자는 쓰레기통이다’ 왜 그럴까? 마음의 욕심이 차면 비우기 때문에, 또는 세상의 쓰레기를 받아주는 사람이라서, 또는 평상시에는 성직자를 본체만체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다쳐 아파할 때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마치 쓰레기통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유를 알고 나면 ‘성직자는 쓰레기통이다’ 라는 말이 매우 참신한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직 나만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천재들이란 공감각적 변이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공감각은 감각끼리의 변화 과정, 즉 ‘-되기(化)’다. 들레즈에 의하면 의미는 주관 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물들이 서로 접속하면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즉 사물들의 접속에 따라 생성된다는 것이다. 생성이란 무에서 유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되는 것’, 또는 ‘-되기’인 것이다. 어떤 공이 있는데, 그것이 ‘공 – 발 – 네트’와 계열화되면 ‘축구공’이 되고, ‘공 – 발 –넘어가는 네트’와 계열화되면 더 이상 ‘축구공’이 아닌 ‘족구공’이 된다. 또한 ‘공- 손-그물달린 링’으로 계열화되면 그 공은 ‘농구공’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하나의 공이 어떤 항과 배치되느냐에 따라 공의 의미는 달라진다. 즉 다른 이웃을 만나면 다른 공이 되는 것이다. 
 
‘-되기’는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 접속하여 또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일으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시각 + 청각>이 청각의 시각화가 되는 것,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와 같은 표현을 말한다. 음악에서는 청각적 감각을 시각적인 것으로 바꿔주면 되는데,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란 작품이 그것이다. 미술에서는 음악과는 반대로 시각적인 감각을 청각적 감각으로 바꿔주면 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덩」이란 작품이 그것이다. 이런 활동을 잘해야 예술 분야에서 천재란 말을 듣는다. 이런 공감각적 심상은 흔히 시에서 많이 사용된다.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든지 “웃음소리가 꽃잎처럼 흩어져 있다”.와 같은 예이다. 
 
이처럼 은유적으로 어떤 개념을 정의하면 언제든지 글을 쓸 때 바로 써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A=B에서 ‘왜 A는 B인가?’ 하는 ‘이유’를 밝혀주면 그것이 곧 시가 되고 수필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개념 해체적 질문을 통해 새롭게 정의하면 자기만의 새로운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소금’을 예로 들어보자. 소금은 바닷물과 햇볕으로 잉태된 아이다, 소금은 죽음으로 거듭난 보석이다, 소금은 죽은 후에 남은 흰 사리다. 소금은 물의 뼈다. 소금은 물의 흰 석류다. 소금은 바다의 상처요, 아픔이요, 눈물이다. 소금은 생명을 살리는 신비의 약이다. 소금은 부패를 허용하지 않는 짜디짠 영혼의 말씀이다. 이런 은유적 표현들이 시의 시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은유의 보석상자’라 하지 않던가. 시를 쓰려면 맨 처음 은유부터 익혀야 하는 이유다. 
 
은유는 움직이는 사유다. A에서 B로 건너가기다. 언어의 감옥인 사전에서 ‘건너간다’는 의미는 질서화를 무질서화 한다는 의미다. 억압에서 자유로 이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의 감옥에 갇혀있는 단어들(사전 속에 억압되어 있는 단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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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前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자문위원
◇ 前중등교사 임용시험 채점위원
◇ 前영흥고등학교 교감
◇ 前인천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교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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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깨봉 칼럼] 생각의 수렴(은유로 정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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