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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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오케스트라에서 신년 음악회로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5번을 연주했다. 해가 바뀌고 2월도 어느새 중반을 향해  달려가지만, 얼마 전 우리나라의 명절인 구정이 지난 뒤라 이제 정말 본격적인 새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일곱 곡이 있는데 그중 번호가 붙은 건 여섯 곡, 그리고 그중에서도 5번 교향곡은 6번 교향곡과 더불어 정말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 중 하나이다. 차이코프스키는 4번 교향곡까지 완성하고 거의 11년 만에야 5번 교향곡을 발표했는데, 그 11년 동안 주로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고 작곡도 했지만 주로 오페라를 썼다고 한다. 그 시기 차이코프스키가 썼던 편지들을 보면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에 내심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11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내적 우울과 갈등이 녹아 있는 것만 같고 마지막 악장으로 갈수록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도 같다. 1악장부터 마지막 4악장까지 반복되어 나오는 주 멜로디는 너무나 아름다워 대중음악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수 민해경의 노래에도 이 멜로디가 나오니 말이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당시 대중들에겐 인기가 좋았지만, 비평가들이나 차이코프스키 자신까지도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도 더해지고 지금 우리들에겐 너무나 아름다운 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지만 시간은 누군가에겐 약이 되기도 하고, 시간과 더불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차이코프스키도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향곡을 쓰지 못했던 데에는 나름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거기에 그가 원래 갖고 있는 우울한 기질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생각의 꼬리들이 우리를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더디게 만드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시간은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만 간다. 물론 차이코프스키도 다른 장르의 곡들을 작곡하고, 연주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 버렸겠지만, 어쨌든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교향곡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그 또한 여러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 뻔하다. 

 

사람의 피부는 일정하게 턴오버 주기를 갖는다고 한다. 그래야 묶은 각질이 탈락되고 새로운 피부가 재생된다는 것이다. 묶은 각질이 제때 탈락되지 못하고 노폐물과 함께 쌓이다 보면 피부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탈락되어야 할 각질도 때가 되기 전까진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다 필요한 존재다. 우리의 삶에서 언젠간 버려져야 할 어떤 것들도 지금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신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다. 지금의 고통과 아픔, 힘든 여정이 언젠가는 탄탄한 장벽이 되어 우리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에는 인생의 턴오버 과정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새로운 피부가 재생되기 위해서 지금의 상처는 결국 아물고 각질이 되어 탈락할 것이다. 비록 여러 원인으로 인해 재생 주기가 길어질 수도, 또는 짧아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피부의 턴오버 주기처럼 재생을 반복할 것이다. 

 

겨울에서 봄을 향해 가는 지금 이 계절에 수많은 생각의 먼지들이 쌓이고 있다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흥얼거리며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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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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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인생의 턴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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