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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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이 가진 가치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교육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터라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단 한 번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울적한 10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왕따, 학교폭력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얽힐 만한 일도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낮은 자존감을 이길 수 있는 힘,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처리할 만한 마음의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글을 쓰고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훈련을 통해, 나는 다양한 방면에서의 교육자로서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제법 어른 소리를 듣다 보니, 안타깝게 흘려보낸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낮은 자존감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놓친 여학생들,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혼자 가슴앓이만 하다가 끝내버린 10대 시절이 생각났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제법 선생 노릇을 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의 힘을 키우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습관화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나와 같은 암울한 10대 시절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고 싶었다. 책을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 어린 시절 봐온 부모님의 인생과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의 인생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고, 또 존중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인생이 없었다면 나와 누나의 인생도 없었을 것이고, 그분들의 노고와 수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하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반면에 어른이 되고 나니, 부모님의 삶이 애처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으로 흘려버린 10대. 그건 분명히 나의 문제였지만, 부모님의 연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존감이 낮은 분들이었다. 반면에 자존심과 고집은 상당히 강한 분들이었다. 부모님의 입에서, 마음에서, 긍정의 단어가 나온 기억이 내겐 별로 없다. 매사에 부정적인 분들이었고, 작은 일에도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하셨다. 어릴 때에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정적인 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고, 그렇게 행동해야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지 않는가.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결코 부정적인 태도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고 난 뒤, 그토록 잊고 싶은 시간이었던 10대가 어쩌면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었을 나의 10대일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왜 나의 10대 시절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는 멘토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 뒤, 그제서야 비로소 헛되이 흘려버린 나의 10대가 너무나 안타깝고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두 번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10대를 마친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올해, 나는 2번째 19살을 살고 있다. 두 번 다시는 부정적인 과거, 부정적인 사람들, 부정적인 기억들에 나를 묻어두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다지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의 40대가 얼마나 찬란할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생각하면서, 후회와 실망, 또 근심 걱정 속에서 흘려버린 나의 10대를 곰곰이 추억해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의 10대 시절을 불러본다. 
 
나의 10대야, 참 미안하다. 
그리고 잘 이겨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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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그리운 나의 10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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