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교육연합신문=전재학 기고]

요즘 저마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그러나 이런 고난 속에서도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세상은 공정해야 하며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사회 심리학에서는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이는 ‘정의’에 관한 심리학 연구의 선구자로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교수인 멜빈 러너(1929~)에 의해서 이뤄진 업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 이러한 세계관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면 오히려 폐해가 더 클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이 무의식중에 표출하는 ‘노력 원리주의’를 주의해야 한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순수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이는 말콤 글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제창한 법칙으로, 간단히 말하면 "큰 성공을 이룬 음악가나 스포츠 선수는 모두 1만 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훈련에 쏟아 부었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일부의 바이올리니스트 집단과 빌 게이츠(프로그래밍에 1만 시간을 열중했음), 그리고 비틀스(데뷔 전에 무대에서 1만 시간 연주했음)에게서 관측됐다는 것뿐이다. 이는 "재능보다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책의 공통된 특징이다. 하지만 주장의 근거치고는 일방적이고 빈약하다.


필자는 섣불리 이 사고에 사로잡혔다간 승산이 없는 일에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이 가설을 신봉해 무언가 불행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보면 그런 일을 당할만한 원인이 당사자에게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소위 ‘피해자 비난’ 편견에 사로잡히게 될 것을 경계한다. 세상에는 ‘뿌린 대로 거둔다’, ‘자업자득’ ‘인과응보’ 등 약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많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 나치 독일에 의한 로마인과 유대인 학살, 또는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자행되는 약자 박해는 세상은 공정한데 곤경에 처한 사람은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는 세계관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게다가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가설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은 사회나 조직을 도리어 원망하게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노력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1만 시간의 법칙이 성립되느냐 아니냐는 그 대상이 되는 악기나 종목, 또는 과목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맥나마라 교수팀은 '자각적 훈련'에 관한 88건의 연구에 메타분석을 행하고 "연습이 기량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기술이나 능력 분야에 따라 다르며 기능 습득에 필요한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은 각 분야에 대해 '연습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성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컴퓨터게임:26%, 악기:21%, 스포츠:18%, 교육:4%, 지적 전문직:1% 등이다. 이 수치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사람들을 얼마나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위험한 주장인지 밝혀준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주장에는 일종의 아름다운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고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 이를 직시하지 않으면 의미 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현실 세계는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 모르게 혼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발탁되지도 않을뿐더러 주목을 받는 일도 없다. 그 결과는? 사람들은 조직에 원한을 품게 되고 심하면 테러를 일으키는 심리로 발전한다. 그래서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의무이다. 남모르는 노력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사고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진심으로 교육하는 것이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교육자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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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현대판 거짓말 - 인천제물포고 전재학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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