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교육연합신문=전재학 기고]

한때 정치권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선거공약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행복권 추구인데 이를 정치권에서 공약으로 내세워 이슈로 부각할 정도로 이상한 나라가 됐다. 우리는 과거 이런 인간의 기본권조차 무시하고 오직 전진을 위한 전진만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왔다. 그 결과는? ‘한 지붕 다른 가족’으로 살아가며 함께 외로운 가족공동체가 됐다. 특히나 학생을 자녀로 둔 가정의 경우는 심각하다.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서 오붓하게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만만찮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녀와 부모 간에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자녀는 부모의 직업을 모르는가 하면, 부모는 자녀에 대해선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게 됐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부랴부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다. 이제 ‘쉼이 있는 삶’은 학생의 가정에 행복권 추구의 로망이다. 특히 주말에는 ‘쉼’을 찾는 강력한 욕망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 당국 처음으로 서울시교육청이 일요일에 학원과 교습소를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학원 일요 휴무제’ 타당성 연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터넷 뉴스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정책연구소가 학생들의 학원 이용 실태 조사해, 학생·학부모 의견 수렴 등을 거쳐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법제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취지지만, 우리 사회 특성상 찬반 논란이 클 것으로 보인다.


우리 학생들이 과도한 학습과 극심한 입시 경쟁에 내몰린 현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 시간은 35시간인데 한국은 50시간으로 가장 길다.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학원 교습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는 사교육비는 서민들이 허리를 더 졸라매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학원 일요 휴무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교육권 침해라는 주장과 함께 오히려 과외 수요를 늘려 사교육비가 높아질 거라는 전망이다. 법제화할 경우 서울 시내 학원과 교습소 중 교과와 관련된 2만여 개의 일요일 영업 중단에 따른 반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학원 일요 휴무제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안이다.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한 대다수 진보교육감이 공약으로 내건 터라 2017년에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 공식 안건으로 상정됐었다. 당시 참석자 대다수는 아동 권리 보호 측면에서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법제화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부모와 학생의 교육권 침해, 실효성 논란 등의 문제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시의회가 2017년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학원 일요 휴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시행에는 오리무중이다. 나이와 학년의 질서를 되찾아 결국 교육의 질서를 회복하자는 본질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요구된다.


아이들에게 ‘쉼이 있는 삶’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다. 시대의 흐름은 인간다운 삶으로 행복권을 추구하는 것이다. 평생학습을 지향하는 배움의 입장에서는 단지 눈앞의 단기적인 교육 성과만을 도모하는 것을 이제는 지양할 일이다. 지금은 인간의 보편적 삶이 100세로 이어지는 장수시대다. ‘쉼이 있는 삶’을 가정에 돌려주고 어려서부터 교육의 장에서 제도화해 이를 전 국민에게 의무화하지 않으면 뿌리 깊은 교육사상에 의한 경쟁은 더욱 야만적으로 변모해 우리를 번아웃 시키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제는 삶에서 양보다 질을 생각할 때이다. 학생들은 인공지능 로봇(AI)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리의 소중한 미래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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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쉼이 있는 삶’의 교육이 필요하다 - 인천제물포고 전재학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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