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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학생들에게 학교는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감상 작품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듯이 학교를 읽고 듣는다. 학교 시설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학생들의 배움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예술성이 있고 감상이 가능한 건축물이 돼야 한다. 이러한 예술성을 가진 건물이 돼야 역사적 건물로 남을 수 있어 그 역사성은 학교로부터 읽기· 듣기를 끝낸 학생들의 쓰기· 말하기를 통해 하나의 큰 원으로 완결될 수 있다. 이제 학교는 학교의 공간과 구조를 포함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 외부에서의 눈이 아닌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의 환경, 공간, 구조 등의 디자인을 고찰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지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지금껏 교사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대부분 관리자의 몫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디자인이란 학교 교사들의 관점에서 학교 환경과 공간을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디자인하고 개선점을 탐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학교환경과 학교교육을 합쳐서 학교디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김교장, 퇴직한 지금도 그 관심은 진행 중이다. 김 교장이 근무하던 부산한솔학교(특수학교)의 학교디자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교실안내판 이야기▶ 일반적으로 학교에 가보면 학급(일반교실) 출입문 옆에는 담임 그리고 간단한 학급소개 안내판이 모두 부착되어 있다. 그러나 교사연구실, 특별실, 행정실 등에는 팻말 부착이 거의 대부분이다. 김 교장은 부임하면서 학교의 특별실을 포함한 모든 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진과 함께 필요한 간단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부착했다. 그리고 교장실에도 학교장을 소개하는 짧은 게시글과 함께 사진을 소개했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도 다양한 군의 근무자들이 있고 제일 중요한 우리 학생들이 있다. 각 교실에 누가 근무하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배려와 소통의 학교디자인인 것이다. ◀교문의 나비조형물 이야기▶ 교문은 막힌 울타리의 입구이고 그 학교의 얼굴이다. 학교 건물과 연계하여 더 상징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소박한 조형물로 기능해야 하며 그 지역의 특색이나 예술성까지도 포함이 된다면 역사적 조형물로서의 가치도 포함이 될 것이다. 지역별로 여행하며 학교 교문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요즈음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마다 건물이 비슷하듯 교문 또한 개성이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의 금정산 기슭에 위치한 금성초의 교문은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 하려고 애쓴 흔적이 있는 디자인이라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있다.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설치물도 정감이 넘치는 디자인이다.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지는 학교이다. 부산한솔학교 교문의 나비조형물은 개교 당시에 설치된 조형물이 아니다. 부산교육청과 함께 외부기관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학교상' 공모에 당선되어 받은 상금을 김 교장은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 여러 방안을 고민하던 중에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우리 학생들과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교문에 조형물을 설치하게 됐다. ◀중앙현관 바닥화 이야기▶ 현관에서 학교 숲으로 향하는 넓은 중앙 홀 바닥에는 '나비와 꽃'(2x2m)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학교 숲으로 가는 입구라는 안내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그림이기도 한 화사하고 감성적인 작품이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아궁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밟지 못하도록 차단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학생들이 밟고 다니며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그림이다. 꽃에 앉아 나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외벽 LED 조명시계▶ 개교하고 학교 건물 외벽에 좀 특별한 대형시계를 설치하기 위해 많은 시간 고민을 했다. 학교는 밤에 불이 꺼지면 적막한 공간이 돼 있고 후미진 외곽에 위치한 학교나 도심에 위치한 학교 모두 약간의 기능적 조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녁에는 아파트의 가로등이나 조명등이 더 따뜻해 보이고 학교는 오히려 주변 시설이 보내는 조명의 덕을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 돼야 하고 야간에도 지역사회에 따뜻한 빛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부산한솔학교에 설치한 조명시계와 같이 아파트의 긴 옹벽을 따라 설치된 환경조형물에 조명등 역할을 부여해 밝은 밤거리를 조성하는 환경디자인은 범죄를 예방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한 산책을 유도하기도 한다. 김 교장은 학교시계는 대부분 시계탑이나 동그란 모양으로 현관 중앙의 높은 곳에 설치한다는 편견을 깨고 반영구 LED전구와 함께 숫자 하나 하나를 외벽에 설치해 고급 전시관에 온 느낌의 외벽시계를 설치했다. 오후 8시부터 새벽4시까지로 자동 세팅하여 인근 지역도 따뜻하고 밝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감탄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비용 문제는 김 교장이 인근 2~3개 아파트시공업체 대표를 만나 위의 내용을 브리핑해 기부로 해결을 했지만 학교를 지을 때부터 이런 환경적인 학교디자인을 고민해 본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자신만의 색깔을 살린 학교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학생을 기를 수 있다. 창조적인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창조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창조적인 인재가 될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할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창의성 있는 학생을 기르고 싶으면 창의적으로 디자인된 학교를 지어야 할 것이다.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전체에 창의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교과와 거기에서 다루는 내용의 배열을 뜻하는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습의 내용으로서 교과과정과 그것을 다루는 활동계획과 교육방법의 계획도 포함하는 교육과정을 담는 그릇으로서 학교를 새로이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학교디자인의 고민은 조화로운 공간 환경을 추구해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 이를 사용하고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오는 곳이 아니라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는 진지한 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미래의 사회는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웃음, 게임, 놀이, 유머 등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놀이적 감성의 반영을 통하여 오감이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학교는 삶의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는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는 모래밖에 없지만 풍요로운 오아시스에는 나무와 물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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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교는 아이들에게 화재대응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황진성 기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화재대응 방연용품의 비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학교 및 공공시설, 아동어린이 시설 등 다중 이용시설의 화재발생 시 유독가스 흡입 및 안전을 위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학교에 화재대응 방연용품을 구입하도록 하되, 많게는 300만 원에서 적게는 2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되었다. 학교의 구매 관계자는 화재대응 방연용품 구매 시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제27조와 관련해 구매면책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학교장은 주어진 예산으로 다수의 학생이 화재 시 유독가스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즘 들리는 소리는 학교장과 업체가 결탁해 물품선정위원회 실무자에게 업체가 제공한 터무니없는 가격과 무인증 제품을 결정토록 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학교 현장에서 번연히 일어나고 있다. 화재대응 방연용품 예산 집행 후 구매면책이 보장된 제품인지, 화마로부터 다수의 아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행안부 재난안전인증 제품인지, 감사를 통해 잘못된 예산 집행에 대해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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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운칠기삼(運七 技三)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우리는 생각(思)을 하면 말(言)이 되고 말은 행동(行)이 되며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習慣)이 되고 습관은 곧 운명(運命)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운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부분도 많다. 의사출신 경제학자 김현철 교수(홍콩과기대)는 시골 보건소 왕진의사를 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더 받는 것을 보고 사회병을 고치기 위해 실증주의 경제학자로 전환, 코넬대 교수에서 가사도우미 비용이 미국보다 홍콩이 저렴해 대학을 옮긴 그 교수도 “인생은 능력일까, 운일까?”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인생 8할이 운이 결정한다고 답했다.(물론 위대한 영웅, 과학자 등 특별한 능력자는 제외, 범인(凡人)들 중에서 일어나는 것) 세상에는 수없는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노력한 만큼 얻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때는 신(神)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운칠기삼'이란 말은 운이 7할(70%) 기술(능력)이 3할(30%)이란 뜻이고 고스톱판에서는 자주 쓰이는데 꾼이 아닌 재미로, 오락으로 즐기는 우리도 정말 수긍될 때가 많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후보자도 한 번 보자. 김종필은 4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혁명정부의 2인자로 평생을 대권의 야망을 갖고 때를 기다렸지만, 80년도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전두환의 등장으로 사라졌고, 이회창은 소위 경기고, 서울법대, 대법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최고 엘리트인데도 M상고 출신 김대중에게, 두 번째는 B상고 출신인 노무현에게 연달아 패하며 사라졌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제치고 단 한 번만에 대통령이 된 것은 단순한 능력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지자막여복자(智者莫如福者)' 삼국지에 조조가 장비 군사가 숲 속으로 피신하여 전멸시키려고 화공(火攻)술을 펼쳐 전소시킬 절호의 기회에 갑자기 먹구름이 일고 폭우가 쏟아져 허사로 끝났을 때 쓴 말이 아무리 똑똑한 놈도 복 많은 놈을 따를 수 없다고 한탄한 이 말도 운 좋은 사람을 나타낸 말이다. 살아가면서 관운, 재운, 명예운, 부부운, 애정운, 자녀운, 부모운, 학운, 친구운, 국운 등등 많은 복을 갖는 사람도 주변에서 많이 본다. 1997년도 부산 Y여고 교장실로 선배 교장이 친구 한 명과 함께 찾아왔다. 차를 마시면서 유심히 나를 보더니 나는 관운은 좋은데 재운이 없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관이 있으면 재물은 동반되는데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절대 과욕을 버리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충청도 공주 마곡사에서 다년간 공부를 한 사람이라고 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를 돌아보니 너무 맞는 예견이고 나의 운명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해 보면 꼭 실력만이 아닌 때도 간혹 있다. 평소 알찬 실력과 노력으로 기대했던 학생들이 실수 혹은 상상 이상으로 나쁜 성적이 나오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학력고사 혹은 수능이 너무 기대 이상으로 나와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90년대 초 내가 잘 아는 집 학생은 성적이 상위권이었는데 수능이 전문대학 진학도 불가한 점수가 나왔다. 방법은 1차에 기적을 바라볼 뿐 딴 방법은 없었다. D대 원서를 써서 본인과 함께 오후 늦게 그 대학으로 갔다. 그런데 그 학교 담임이 거절할 뿐 아니라 학급 전체 학생들 앞에서 '네가 여기 합격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무안을 줬다고 했다. 나도 오기가 생겨 입시의 점을 이용, 접수 마감 30분 전에 미달학과 몇 개 챙겨 그중 제일 센 학과에 접수할 각오로 있었다. 왜냐면 이 점수로는 끝까지 미달돼야만 합격할 수 있고, 한 명만 넘어도 탈락하기 때문이다. 마침 6시 마감까지 정원보다 3명이 미달돼 합격의 영광을 안았고 무사히 그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 잘살고 있다. 이 얼마나 행운이고 기적인가? 그 학생은 소위 학운이 좋은 것이다. 그때 그 담임은 손가락에 장을 지졌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또, 내가 담임한 학생은 어머니가 경북의 명문여고를 졸업했지만 가정이 어려워 서울에 가고 싶은 대학을 진학 못 했고 부산의 약사 남편과 결혼, 시내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첫 면담 때 본인이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 딸에게서 꼭 실현하고파 초등학교부터 계획된 학습프로그램으로 키워왔으니 꼭 성취하길 바란다고 소원했다. 간혹 한 번씩 멋진 도시락을 진학실로 보내 주기도 했고, 나도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런데 학생 본인은 그 어머니의 지극 정성이 부담스러웠고 힘겨워, 무언의 반항감도 있었다. 학생은 인물도, 심성도 고우면서도 결국 그 소망이 거부된 채 서울의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도 내가 더 안타까움이 남는 학생이다. 1986년도에는 대학입시에서 영어가 제2외국어로 지정된 유일한 해가 있었다. 그 해 나는 3학년 부장을 맡았고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하는 선택반을 만들어 담임을 맡았다. 한마디로 인문계 7개 반 중 모의고사 성적은 최하위였지만 열심히 한 결과 일본어 평균점수가 43점(50점 만점)으로(영어는 평균 30점 대) 수학 점수까지 만회가 되었다. 고려대 일문과 1명, 부산대 일문과 7명 등 전국 일문과에 대다수가 진학했다. 그 제도가 아니었다면 4년제 대학 진학조차 거의 불가능했고, 이건 국가가 만들어 준 행운이었다. 교직은 평교사는 특별한 일 없으면 정년까지 편안히 마칠 수 있지만, 사립학교 관리자(교장)는 사립학교법 정관 규정에 따라 임용되어 정해진 임기(그 당시 2~4년 연임, 요즘은 4년 중임)를 따라야 하며 또 설립자가 다른 타 사립학교 간 인사이동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운칠기삼이 아닌 운 49%, 능력 51%(능력 중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신설 Y여고에서 첫 교감을 맡은 2년 후에 이사장님께서 교장으로 승진하라고 했다. 난 정년이 18년이나 남았고 재단의 친인척도 아니서 극구 사양했는데 결국 그 2년 후에는 부득이 40대 교장이 됐고, 또 전임교에서 강력한 초빙으로 이동과 동시에 운명의 세월을 보내면서 4개 학교를 돌고 돌아 정년퇴임을 하게 됐다. 대신 부산의 최연소 교감, 최연소 교장, 최다학교 교장의 타이틀을 가진 영광은 얻었다. 내가 신설교 초대 교감일 때 이사장님의 총애를 받았던 것도 돌이켜 보면 1992년도에 개교 준비를 위해 교직원 책걸상 등 집기를 구입하러 광복동의 동영강철사에 이사장님과 동행했다. 그 사장과 한참 얘기를 나누면서 가격 흥정에 조율을 못했다. 그때 내가 이사장님께 현금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사장보고 현금지불(그 당시는 대부분 6개월 당좌수표 거래) 조건으로 50%로 할인 가격으로 해라. 대신 2년간 연속 이 집에서 구매하겠다고 했더니 주인이 쾌히 승낙을 했고 그 후 약속대로 이행했다. 그때 이사장님께서 장사 50년을 한 자기보다 학교 선생이 어떻게 그런 방법을 아느냐고 했고, 전임교 이사장께 배웠다고 했더니 그것이 학교 경영을 맡겨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고, 인물도, 학벌도, 능력도 없는 나를 40대 교장으로 인준한 것 같았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정년퇴임 해인 1월에 동창 아들 결혼식장에 갔는데 사업하던 친구가 퇴임 후 계획을 묻길래 별 뜻 없이 택시 기사나 아파트 경비라도 할 거라 했더니 자기 회사에 출근하라고 했다. 그 당시는 덕담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3월 초 서울 아들 집에 가 있는데 전화가 와 왜 출근하지 않느냐며 당장 내려와 내일부터 출근하란다. 직원이 270여 명이나 되는 중견 공장이고 나는 인사·총무 담당 상무를 2년간 했다. 그 후 제1회 대한민국 독서박람회 운영위원장,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등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순전히 운이며 좀 과대 표현하면 욕파불능(欲罷不能-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다)이란 말이 생각되기도 한다. 부산 모 국회의원과 차담을 하면서 능력은 물론이지만 운도 참 좋았다고 했더니 그 백 모 의원은 겸손하게도 "운이 7할, 천운이 3할"이라고 해서 함께 웃었던 적이 있다. 나는 항상 운이 49% 능력이 51%라고 생각하며, 지난날도, 지금도 모두에게 감사하며 지낸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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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교장실부터 바꾸어 보자! 무엇이 달라지는가!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대부분 학교에서의 교장실 출입문은 행정실과 연결되어 있고, 학교에 따라 교장실 출입문을 폐쇄하고 행정실을 통해 출입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행정실에서 들어가는 출입문과 교장실로 직접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교장실이 투명하지 않으면 학교장이 교장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볼 수가 없다. 불투명 유리나 블라인드로 가린 경우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과 선생들은 교장실 문을 열지 않는 한 학교장이 무엇을 하는지 볼 수가 없다. 십여 년 전부터 새로 짓는 학교에서는 모든 교실의 창을 투명창으로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학교도 창호공사를 통하여 투명창으로 교체되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교장실만큼은 아직도 변화가 필요한 곳이 많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투명해진 유리창은 학생들에게는 교장실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들에게는 행정실로 번거롭게 들어가서 부재 여부를 알거나 부재 여부를 알기 위한 노크를 하는 일이 없어진다. 일반적인 문과 비교하면 전면 유리창을 가진 문은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차이가 있다. 링컨도 항상 누구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집무실을 항상 열어두었다고 한다. 교장실의 투명 유리창은 만남을 촉진하는 상징적 표현이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교장의 비전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막힌 권위가 아니라 소통하는 권위이다. 핀란드의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디자인의 본질인 비관료적이고 민주주의적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의사결정 방식은 수평순환 구조이다. 우리의 조직문화는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수직선형적 구조이며, 상명하달식의 의사전달이 대부분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이다. 업무의 전문성에 대한 열정이나 천착, 자신의 개성이나 특기를 함양하려는 관심은 애당초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개인의 자아실현, 일상의 행복 등 삶의 가 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여지는 수평적 조직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교장실의 투명 유리창으로 교직사회의 현실이 개선될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학교 구성원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실천해야 우리의 미래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개개인이 타인, 그리고 사회와 바르고 원만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모든 리더가 ‘친화력’을 자신의 가장 큰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 교장은 개교 학교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고 일반교실과 똑같이 교장실을 투명창으로 교체했고 두 번째 학교인 '신나는 학교, 신남'에서도 발령 첫날, 교장실 창문부터 화끈하게 투명으로 교체하고 아이들과 선생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교장실로 꾸몄다. 자연스러운 소통의 시작이다. 김 교장은 출근하면 교장실 출입문부터 활짝 열어두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선생들이 업무차 들어왔다 나가면 꼭 문을 닫아준다. 그러면 또 쫓아가서 열어 놓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니 '교장 선생, 문은 그냥 열어 둘까?'하며 나간다. 열려 있는 문은 누구든지 언제든 들어와도 된다는 '소통'의 상징적인 의미이다. 선생, 학부모, 직원, 아이들 모두가 지나가다 들어와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들여다보고 인사만 하고 가기도 한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관심이 가장 많다. 하루는 2학년 귀요미 4명이 김 교장에게 신기한 것 보여준다며 별을 만들 수 있다고 들어왔다. "우와, 너무 신기하다"며 "4명이 힘을 모으니 별도 만들 수 있네. 대단하다!"고 폭풍 칭찬을 했다. 그리고 교장실 구경해도 되냐고 물어본다. '암만 암만'... 궁금이들의 궁금증을 그렇게 해결했다. 하루에 평균 20여 명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교장실에 놀러 온다. 이 친구들 응대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는 김 교장이다. △교장선생님, 뭐하세요?' △교장선생님, 이거 어디 갇다 놓으면 되요?' △교장선생님, 애들이 싸워요. 빨리 와 보세요!' △교장선생님, 이거 뭐예요?' △교장선생님', 파마 하셨어요?' △교장선생님, 글씨는 언제부터 잘 적었어요?' △교장선생님, 행정실이 어디에요?' △교장선생님, 이리 와 보세요. 저기 이상한 거 있어요.' △교장선생님, 이거 제가 만든거예요. 잘 했죠?' △교장선생님, 내 꿈이 뭔지 아세요?' 교장실 앞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 생각이고 아이들의 꿈을 소재로 소통하려고 출입구 옆 벽면을 '꿈 낙서판'으로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꿈을 문자화함으로써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년 후, 교장의 꿈도 아이들과 함께 함께 적어 보았다. 뭔가 분명해지는 듯하다. 아이들의 소중한 꿈 낙서가 빼곡히 채워지면 훌륭한 미술작품으로 탄생될 것이다 매일 아이들의 꿈을 읽으며 응원도 하고, 힐링도 하고 있다. 선생들도 가끔씩 와서 살펴보고 살짝 적기도 한다. 2월이 되면 액자로 만들어 작품으로 전시하고, 3월에 새 낙서판을 준비할 것이다.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 고등학생이 되어, 이 다음에 '어릴 때의 꿈'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마음일까? 우리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고 도전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한다. 점심시간에는 김 교장이 아이들이 노는 운동장이나 뒷마당으로 나간다. '얘들아, 무슨 놀이 하노? 교장선생님도 같이 해도 되나?' '거기는 위험해. 이리 와.' '왜 울어? 빨리 눈물 닦고 친구들과 같이 놀아.' '이거 어떻게 차는 건데?' 그러고 보니 교장실에서는 아이들이 김 교장에게 많이 물어보고 운동장에서는 김 교장이 아이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다.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 교장실에서 '10분 데이트'를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김 교장이 매일 아침 등교맞이를 하는 교문 앞에서 만나면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먼저 신청하는 씩씩한 남자다. 교장실 들어올 때는 5분밖에 시간이 없다고 튕겨 놓고 나갈 생각도 안 하는 시크한 남자다. '싫어요! 몰라요! 왜요! 왜 알아야 되는데요! 몰라도 되요!‘로 대화가 다 되는 엉뚱한 남자이다. 본인의 이름 외에는 아무 글자에도 관심이 없는 이 남자가 어느 날 로봇을 그렸다. "아하, 우리 OO이가 건담로봇을 좋아하는구나." 건담로봇을 그렸다는 것을 알아주니 김 교장에게 시크한 미소를 보내준다. 그나마 김 교장과는 쿵짝이 잘 맞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OO아, 네가 가장 가까이 만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우리 집도 알아야 하고, 우리 학교도 알아야 하고, 우리 부모, 선생, 친구까지 점점 관심을 넓혀 나가자. 할 수 있겠지? 넌 할 수 있어! 그렇게 김 교장이 있는 교장실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학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들어와서 따뜻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김 교장은 그렇게 교육의 해답을 찾아간다. ▣ 김미영 ◇ 前신남초등학교 교장 ◇ 前부산한솔학교 교장 ◇ [특수교육 교구 제작의 이론과 실제] 저자 ◇ [학교디자인의 실제] 공동 저자 ◇ 부산교육대상 수상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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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전설이 된 추억 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교직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전설 같은 추억 몇 개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름답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마음의 행복과 힐링을 경험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돌아가 잠시 마음속 추억을 그리움으로 회고해 본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을 빌면 팬덤(Fandom) 현상이라 하겠다. 나는 70년대 신설 사립 인문 여고에 교원 채용 응시를 했을 때, 유일하게 총각이라 1년 안에 결혼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임용됐다. 결혼이란 것이 어디 쉬운 문제가 아니어서 몇 년이 흘렸다. 그 당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시대였기에 학생들은 TV와 학교 선생들이 유일한 소통의 대상이다. 당시는 또 교사들에 대한 인기투표도 있어 총각 선생은 항상 특혜를 누렸고 보통 몇 명의 팬들이 확보돼 있었다. 부산 구포 소재 K여고 교장실로 40대 중년의 아름답고 세련된 미인이 들어섰다. 학부모는 아닌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바로 전임학교 졸업생 장 모 양이었다. 그 학생은 재학 중 미스코리아에 출전 전력이 있는 자타가 인정하는 인물로 예쁘고 심성도 고운 학생이다.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내 자리를 정돈해 놓고 커피도 두곤 했다.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는 이미 소문이 날 정도로 나의 팬이었다. 졸업 때쯤 되어 면담을 요청해 상담실 아닌 예배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뭔가 긴장된 중요한 일 같아 뒷자리를 잡고 얘기를 들었다. 가벼운 것부터 시작, 예상대로 최후의 통첩 같은 말을 했다. 본인은 졸업과 동시에 나와 결혼을 하겠다. 내가 나이가 많아 본인은 대학을 포기하고 먼저 결혼 후 꼭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도 이미 포기했고 오직 결혼 결정만 했단다. 순간 머릿속이 하얀 상태로 변했고 어떻게 설득할까? 부모들은 알고 계시냐? 바로 결혼한다면 나도 먼저 학교를 옮겨야 한다. 어떻게 이 학교에 근무할 수 있겠나? 직장 이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상태로는 결혼은 불가하니 너부터 재수해서 대학 진학부터 하자. 먼저 입시 준비를 하자고 했더니 갑자기 어깨가 들썩들썩하더니 오열을 터뜨리고 졸도를 했고 넘어졌다. 순식간 일이라 목사님이 양호선생을 호출하여 응급처치를 한 한참 후에 진정이 됐다. 그 후 그 학생은 졸업과 동시 대학을 포기하고 멀리 대구에 있는 교사와 결혼해 가버렸다. 20년 후 만나 즐겁게 식사를 하며 전설 같은 추억과 아련한 기억을 함께 먹었다. 에피소드(1) 조 모양은 학급 반장으로 같은 반 또 다른 학생과 나를 두고 너무 심각하게 다투어 학기말에 결국 마산으로 전학을 갔다. 모든 것이 해결된 듯했는데 다음 해 3학년 초에 다시 전학을 왔다. 보통 선생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무조건 대학을 가라. 대학 가서도 마음 변치 않으면 결혼해 주겠다고 설득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왜 그때 선생처럼 못난 사람을 좋아했는지 서로 웃음을 짓고 과거를 추억한다. 그런데 이 학생은 서울로 진학을 했고 대학원을 마치고 학원과 대학에도 출강을 하면서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학원 영어 강사와 결혼을 했단다. 그것도 나와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유부남에게... 이성의 문제는 지식의 차원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참 불가사의한 문제다. 에피소드(2) 또 하나 재미나는 추억은, 김 모 양은 자기는 부산대 간호과를 꼭 진학하여 나의 건강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허약하게 보여 전문적 공부를 해 확실하게 책임지겠단다. 기특하기도 하고 놀라워서 고맙기도 했지만, 나는 이미 결혼도 했고 사회적 제약도 많으니 너 하고 싶은 전공을 택해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재미나게 살아라고 했다. 결혼은 이혼이란 제도를 이용하면 되고, 학생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자라는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자기를 기피한다고 생각하고 그해 말에 경남여고로 전학을 가 버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편지가 왔고 열심히 해 목표한 대학에 진학을 했단다. 그해 스승의 날에 학교를 찾아와 커피를 나누면서 지금도 그 마음 유효한지 물었다. 해맑은 표정으로 대학에서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미팅도 하면서 폭넓은 시간을 보내니깐 옛날은 까마득히 잊고 한 때의 추억이고 성장 과정이었으며 정말 선생이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 또 선생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좋은 인연으로 생각한다며 어른 같은 말에 후련하면서도 섭섭함을 느낀 것은 여고생답지 않은 저돌적 행동과 지금의 냉정한 마음의 변화 때문이었을까? 에피소드(3) 몇 년 전 한 40대 제자로부터 광안리 커피숍에서 전화가 왔다. 점심식사를 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만나보니 얼굴이 기억났고 아주 세련된 중년이었다. 차를 나누면서 고3으로 돌아가 담임이 누구였고 친구들 이야기, 재미났던 추억들을 소환하면서 먼 과거 교정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본인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 못됐고 내성적 성격이라 다른 애들처럼 호불호를 표현 못했고, 3년간 좋아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서울로 진학했는데, 적응을 못해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중도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환경이 바뀌고 고국과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생활하니까 친구 몇 명과 남자라곤 마음속 간직한 나를 더 그리워하고 사랑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하고 가족들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부모들의 주선으로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생기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침 가족 행사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꼭 용기를 내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마침 중학교 교사로 있는 여고 동창에게 연락이 돼 내 번호를 수소문해 알았다고 했다. 20여 년 만에 털어낸 그녀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니 꼭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환생되었다.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면서 보낸 그 시간은 참 많은 기억을 더듬어 주었다. 에피소드(4) 지난해 여름 KTX를 타고 서울 가는 중 광명고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여자분이 제자라고 하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느냐고 했다. 승낙 후 바로 한 통의 전화가 왔는데 S여고 몇 회 졸업생인데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며칠 후 만나 과거사를 들어보니 중3 때 연합고사 감독으로 내가 들어왔고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는데 또 우연히 S여고에 배정을 받아 3년간을 나를 좋아했지만 직접 표현은 못한 채 내가 복도를 지나가면 반 친구들이 대신 OOO!, OOO!이라고 외쳤다고 했다. 대학 영문과를 나와 오랜 시간 학원 강사를 했고 지금은 직접 경영한다고 했다. 결혼도 하고 자녀들이 곧 결혼 준비 중에 있으며, 60대 초입으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이 얼굴에서 보였다. 요즘도 가끔 전화하며 한 번씩 차를 나누며 40년 전의 얘기를 추억하는 천사 같은 제자다. 난 관리자를 교사보다 오래 한 불행한 선생이지만 이런 제자들을 생각하면 참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교사는 담임, 특히 고3 담임이 가장 보람 있다. 그런데 나는 간부직, 관리직을 더 많이 했다.) 불과 40년 전 만해도 우리는 초등학교만 남녀공학이고, 도시의 대부분은 여중, 여고로 분리돼 컴퓨터, 스마트폰은 상상 속의 일이고 오직 공통된 교복만 입고 다닌, 저 먼 달나라 속 얘기 같은 시대임.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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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장의 따뜻한 학교 이야기] 교육은 아이들이 답입니다
[교육연합신문=김미영 기고] 겨울왕국 'Let lt Go' 음악에 맞춰 엘사공주가 등장한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여 긴장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고 잠시 동안 입학식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를 방문한 유치원 아이들에게 김 교장은 살짝 질문을 해 보았다. 초등학교는 어떤 곳일까? "공부하는 곳. 친구들이 많은 곳. 유치원보다 선생님이 무서운 곳,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곳 등"이라는 아이들의 생각을 듣게 된다. 아마도 주위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입학하기 전부터 학교에 대하 경직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김 교장의 고민이 시작된다. '학교는 신나고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입학식부터 잘 준비해 보자는 마음으로 그 또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고 고민 끝에 엘사교장이 되어 보기로 작정을 하고 1학년 선생님들과 입학식 전 과정을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입학식 이후 우리 1학년 천사들은 김 교장을 만나면 "엘사 교장 선생님" 하고 부르며 뛰어와 안기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면 교장실에도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아이를 바래다주러 온 학부모들도 교문 앞에서 만나면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무척 즐겁게 생각한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듣기도 했다. 경직되어 있는 곳에서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곳이어야 하고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하며 편안한 곳이어야 하는 또 하나의 집이어야 한다. 부임 첫날 김 교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장실의 창문을 투명하게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편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교장실 출입문을 항상 열어 두는 것이다. 아이들의 반응과 선생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학년들은 여기가 엘사교장이 사는 곳이라고 물어보며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그 외 학년들의 눈에는 신기한지 지나가면서 계속 들여다보기만 하다가 들어오라고 손짓하면 바로 들어와서 재잘재잘한다. 얼마나 이쁜지? 그러면서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교육의 답을 찾아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다. 교장실이 투명하지 않으면 교장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투명해진 유리창은 아이들에게 교장실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가 있다. 링컨이 항상 누구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집무실을 열어 두었듯이, 창문으로 교장의 업무 모습을 볼 수 있고 문이 열려있으니 쉽게 들어올 수 있게 되었지. 권위를 넘어 소통을 잘해보겠다는 김 교장의 의지이기도 했다. 이만큼 우리 어른들의 메시지는 중요하다. 아이들과의 소통은 곧 학부모들과의 소통과 연결된다. 선생들과의 소통은 아이들의 행복과 직결된다. 이것이 김 교장이 매 순간 애쓰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학교교육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이지 않을까? 김 교장이 신남초에 부임해서 느꼈던 점은 학교가 전체적으로 어둡고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학교가 오래되기도 하였지만 복도에 걸린 낡은 게시물과 구석구석 버리지 못하고 구석구석 쌓아둔 물건들을 비롯하여 겹쳐겹쳐 붙여 놓은 스티커들이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복도 게시물을 과감히 철거하고 낡은 학급 표찰에는 교체할 때까지 희망의 상징인 나비를 전 교실을 다니며 휴일에 출근하여 부착했다. 나비를 부착한 이유는 ‘나비가 되려면 애벌레는 부지런히 신선한 잎들을 먹고 때가 되면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실로 고치를 만든다. 고치라는 틀을 깨는 과정에서 나비는 작은 구멍을 비집고 나와야 하고 이때 가위로 구멍을 크게 해 주면 불행하게도 그 나비는 평생을 날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서 뒹굴게 된다고 한다. 나비가 작은 구멍을 힘겹게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동안 그 몸통에서 나온 액체가 날개를 적시고, 그렇게 단련된 날개라야 훨훨 잘 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날개가 약해 잘 날지 못하지만, 조금 지나면 날개에 힘이 생기고 화려하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어 훨훨 잘 날아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나비의 변태처럼 혼자서도 작은 구멍을 뚫고 나와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은 기다려주고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고 조금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행동을 모델링하게 되는 데에서부터 교육은 시작한다. 김 교장은 아이들에게서 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점점 흐려져가는 것들도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때론 예쁘게 덧칠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내가 얼마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끊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선생님일 수가 없다. 교육은 아이들이 답이다! ▣ 김미영 ◇ 前신남초등학교 교장 ◇ 前부산한솔학교 교장 ◇ [특수교육 교구 제작의 이론과 실제] 저자 ◇ [학교디자인의 실제] 공동 저자 ◇ 부산교육대상 수상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